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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웃이 있다 - 문저온 (시인)

  • 기사입력 : 2023-12-28 2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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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건너 붕어빵 집이 생겼다. ‘몇 마리 사 올까요?’ 정말 붕어를 사 오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는 ‘마리’라는 말을 썼다. 한참을 걸려 사 온 붕어빵은 지느러미가 탔다. ‘오래 걸려 죄송하다고 한 마리 더 주던데요.’ 아이가 웃었다. 우리는 초보 붕어빵 장수의 서툰 솜씨와 이렇게 재료를 듬뿍 써서 수지가 맞겠느냐는 걱정을 이야기했다. 사장님이 여자인데 이십 대로 보인다고 했다. 추위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는 않을 텐데도 고생이 많겠다는 걱정이 더해졌다.

    붕어빵을 사러 갔다. 불 꺼진 포장마차가 길가에 서 있었다. 비닐이 걷힌 채여서 개시 전인 듯도 보였다. 승용차가 깜빡이를 켜고 포장마차 앞에 서 있었다. 붕어빵 사장님이 내릴까 하여 지켜보았다. 반죽이 담긴 통을 실어 오는 건지도 모르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사장님은 내리지 않았다. 그도 역시 붕어빵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보았다. 발길을 돌렸지만 누군가가 포장마차를 지켜주는 듯해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붕어빵 가게는 열리지 않았다. 장사를 접은 걸까? 며칠이었지만 반가웠던 마음이 염려로 바뀌었다. 그는 자기가 붕어빵을 굽는 데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한파 속에서 불을 밝히고 밤을 지키는 일이 힘에 겨웠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정이 있었을지도. 하지만 그는 도전해 보았지. 머리로 재고만 살지는 않았지. 얼굴도 모르는 그의 안녕과 또 다른 도전을 빌었다.

    치킨집이 생긴 지는 꽤 되었다. 개업 떡을 얻어먹고 치킨을 사러 갔다. 배달 전문이라는 좁은 가게 한쪽에서 사장님과 친구들이 왁자하게 파티를 열고 있었다. 갓 스물 넘었을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기특했다. 그날부터 닭 굽는 냄새가 동네를 에워쌌다. ‘장사를 시작하나 보네’라는 짐작은 ‘냄새가 심한데’로 바뀌어 갔다. 냄새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창을 닫아도 파고드는 냄새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닭이 타는 역한 냄새에 쇠 단내가 더해져 마치 부릉대는 버스 뒤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탄식이 줄어든 건 치킨집을 다녀온 식구 때문이었다. 쓰레기 문제로 치킨집을 두드려 사장님을 만나고 온 식구는 ‘가게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자던 사장애가 잠이 덜 깬 채로 부스스 일어나 나오더라’고 했다. 치킨집의 일과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새벽 한 시까지 부릉대던 배달 오토바이, 한낮이면 적막한 가게, 해 질 무렵 다시 시작되던 닭 굽는 냄새. 어린 사장님은 새벽 장사를 마친 뒤 가게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잠드는 거였구나.

    너그러움이 생겼다. 먹고사는 일 앞에 고개 숙여지는 마음이랄까. 이웃이란 한데 어울려 냄새 풍기고 서로 견디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살면서 내가 피운 냄새들도 있었을 것이다. 너그러움의 9할은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다들 애쓰며 산다. 함께 애쓰는 일이 영영 사라진 듯 보이는 도시지만, 문 닫힌 한낮의 치킨집과 길가에 남겨진 붕어빵 포차의 고독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실은 우리 모두 고독하므로….

    18일 영원한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작가 서경식 교수가 죽었다. 27일 배우 이선균이 죽었다. 죽음이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는 않겠지만, 생이 그 손을 놓아준 사람과 떠밀리듯 생을 놓아버린 두 사람의 먼 이웃을 생각한다. 글로 연기로 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린 이웃을 생각한다. 시대를 함께 호흡하다 떠난 자리, 우리 곁에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아저씨가’ 남았다.

    문저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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