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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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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진불(天眞佛)- 법안스님 (성주사 주지)

  • 기사입력 : 2023-09-20 19: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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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끝자락에 우는 두견새 소리와 도도하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 찌릿하게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의 절묘한 화음(和音)은 계절의 손바뀜이 주는 무한한 축복입니다. 거기에 숲이 주는 고즈넉한 침묵과 맑은 가을빛의 평온함은 상적광(常寂光) 세계 그대로입니다. 이토록 계절의 손바뀜이 들려주는 생명의 내음은 존재의 영광을 헌사합니다.

    흔히 가을을 무상(無常)의 계절이라 합니다. 한 해의 새로운 절반의 시작으로 무더웠던 날이 홀연히 서늘해져 센티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을을 맞아 무상대도(無常大道)의 경계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세상의 흐름이 너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것 같아 시절이 왠지 하수상합니다. 철 지난 이념 논쟁은 듣기가 몹시 거북합니다. 끝도 없는 사건 사고가 줄을 잇는데도 그 현상에 대한 명민한 분석을 통한 책임 있는 대처와 재발 방지가 보이질 않아 마치 며칠 동안 양치를 못한 기분입니다. 세상을 직관하는 문수의 지혜와 묵연히 수고를 덜어주는 정의로운 보현행이 요구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의 얘기를 들을 줄 아는 감인대(堪忍待)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위정자들의 하심하는 자세와 국민을 섬기고 소통하는 대오각성의 진지함이 촉구됩니다.

    “어느 날 배 상공이 불상 한 구를 대사 앞에 들고 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청하옵건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대사가 불렀다. ‘배휴!’ 배휴가 ‘예’하고 대답하자 대사가 말했다. ‘내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주어 마쳤소.’ 그러자 상공은 곧바로 절을 올렸다.” -황벽선사의 완릉록-

    배휴불은 법신의 세계인 천진불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거룩한 존엄의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멋진 법문입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이미 부처라는 사실입니다,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 보신과 화신은 망령된 인연이요.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법신은 청정해 넓고 끝이 없어라.

    천강유수천강월(天江流水天江月) 천개의 강물 위에는 천개의 달이 뜨고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만리 하늘 구름 없으니 하늘 끝 없어라.

    -종경선사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한 생각 내려놓고 마음 활짝 열어 비추어 보면 세상 모든 존재가 내 안에 있는 형제요 가족이거늘 무얼 그리 착(着)할 일이 있겠습니까. 아등바등 허덕거릴 이유가 하등 없는 공생동락(共生同樂)의 부처일진데.

    추석 한가위 명절 쇠러 가는 길에 휘영청 달을 보시거든 본향(本鄕) 가는 법광(法光)이기를 기원합니다. 모두가 법신현현(法身懸懸)의 천진불입니다. 고맙습니다.

    법안스님 (성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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