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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돌아가는 것은 되살리는 것이다-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3-09-13 19: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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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일에 지쳤을 때 우리는 돌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그 돌아감의 대상은 하루의 일과로 볼 때는 집일 터이지만, 도시의 삭막하고 무료한 일상을 염두에 둘 때는 고향이거나 부모님이 계신 곳일 것이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속으로 뇌까리는 이 말은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언젠가 자신의 삶을 그것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주문(呪文)과 같은 이 말은 지치고 상처받은 존재가 제 영혼을 쉴 수 있게 하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의 표현이자, 간절한 기원(祈願) 같은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이 나에게 너무나 큰 결핍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질적 궁핍에서부터 정신적 피로와 강박은 나날의 삶을 메울 수 없는 큰 허방으로 남게 한다. 철학자 한병철의 지적처럼 성과사회가 몰고 온 성과 지상주의는 우리들의 삶 자체를 남은 물론 나와도 경쟁시켜 끝없는 피로 속에 잠식되게 한다. 쉬지 못하는 영혼은 쫓기는 영혼이다. 자아 강박증과 낙오 불안증은 결국 만성우울증으로 이어져 고립과 폐쇄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할 뿐이다.

    마음의 여유는 그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것은 바로 그 성과 지상의 가치에서 자신을 해방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쉬이 되는 일이 아니고,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는 힘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때문에 여유를 찾는 일도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할 뿐 대다수 사람은 일상의 회로 속에 갇혀 쳇바퀴처럼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그 가능성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공 신화로부터 초연한, 즉 자발적 가난을 냉정하게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발적 가난, 그것이 마음먹는다고 쉬이 될 수 있는 일인가?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더 난감한 일이다.

    선택도 쉽지 않고, 그것의 실천은 더욱 어려운 것이기에 나날의 삶에서 우리의 목마름은 깊어만 간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내가 쉽게 결단하지 못했던 것을 선인 중 누군가가 했던 것을 보며 마음의 한 자락을 달래보는 일일 것이다. 그때 도연명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도연명도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을 품었기에 ‘전원으로 돌아가자’ 하고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를 읊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져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라고 외치는 마음은 단순히 정치 권력이나 도회적 삶에 대한 환멸에 기인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고향을 비롯한 전원에 그의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음을, 곧 돌아가는 것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귀거래’는 진정한 삶을 살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의 시점에서 어디로 돌아가고 어떤 선언을 하여야 할 것인가? 마음의 희망을 버리기 싫어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옛고향은 고향 같지 않아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지만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은 본능을 넘어 어떤 절대적 과제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육사의 「절정」 처럼 눈을 감고 생각할 수밖에. 내 삶의 의미로 볼 때 돌아가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는 것은 근원을 탐색하여 삶의 또 다른 측면을 충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놓친 것을 돌아보는, 즉 되새겨 돌보는 마음도 가질 수 있다. 그래, 돌아가는 것은 돌아보는 일이자 나를 비롯해 이 세상의 쓸쓸한 존재들을 돌보는 것이자 되살리는 것이기도 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따스해져 어떻게 돌아갈지를 궁리하는 것이 요즈음의 생활이 되었다.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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