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풀벌레 소리- 이창규
- 기사입력 : 2023-07-06 08: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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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가
오솔길을 따라다니다가
해 질 무렵
온 들에 자리 깔고 앉았다.
어둠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당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큰 산, 작은 산
몸뚱이는 숨어버리고
풀벌레 소리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
☞ 아파트 화단의 영산홍 우거진 수풀 속에서 올해 첫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었다. 탁한 공기 속으로 청아한 소리가 퍼져나가 여름밤이 초록색으로 환해지는 듯했다. 스스스스, 츠르르츠르르, 까르륵까르륵. 어떤 벌레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들을수록 세심하고 정교하여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 속에서도 풀벌레가 울어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오솔길을 따라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온 들판을 울리고, 우리 집 마당까지 나를 따라온다. 여름밤, 들판도 하늘도 죄다 까맣고 별빛 달빛은 아득히 멀다. 까만 들판에 풀벌레 울음소리 차올라 먼 별빛에 닿을 듯하다. 풀벌레는 제 몸을 얼마나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저토록 세심한 소리와 운율로 노래할 수 있을까? 바람을 따라 풀벌레 소리가 마당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문득 겸연쩍어진다. 갈고닦아서 넓어져야 한다. 그저 스스스, 츠르르, 까르륵이라고 쓰는 나를, 풀벌레 소리가 흔들어 깨운다. -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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