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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꽃의 속도- 이지혜(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3-04-05 19: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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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들 벚꽃엔딩을 잘 즐겼는지. 꽃몽우리가 하얀 팝콘처럼 순식간에 팡팡 터졌다가 또 금세 날려버리니 아쉬운 마음보다 황당한 마음이 앞서는 봄날이다.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봄날을 오래도록 누리려 했는데 군데군데 한꺼번에 펴 버린 것도 황당스럽다. 5월 즈음에나 볼 수 있는 겹벚꽃과 라일락이 벌써 펴버린 동네도 있단다. 이런 속도라면 곧 2월의 벚꽃축제가 열릴 수도 있다는 황당한 예측도 나왔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227.3일간의 가뭄은 1974년 이후 최장 가뭄이었고 열대야는 예년보다 빠른 6월 25일에서 27일 사이에 발생했다. 온열질환자는 1564명으로 예년 대비 13.7%가 늘었고 지난해 한반도를 덮친 5개의 태풍은 평년보다 3.4개 더 많았으며 7년 연속으로 9월이 태풍 영향권에 속했다. 모두 우리가 받은 이상기후의 경고장이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은 양복을 입고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투발루에서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고 연설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 발표 관련 기자회견에서 나선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인류가 얇은 얼음 위에 서 있고, 그 얼음은 빠르게 녹고 있다”며 “기후 시한폭탄이 똑딱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꽃의 속도가 황당스러운 건 상춘객뿐이 아니다. 더디게 따듯해지는 땅 속에서 겨울을 나는 꿀벌은 꽃이 다 피고나서야 지상으로 올라오게 됐다. 수천, 수만년간 이어져 오며 인간을 존재할 수 있게 했던 꽃과 벌의 공존도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뜻이다. 봄날 꽃나들이 일정을 고민하다가 꿀벌의 생존을 걱정하고, 또 동시에 인류의 안녕을 우려해야 한다. 감탄을 자아내는 벚꽃엔딩 속, 머리 위로 아름답고 섬뜩한 경고장이 흩날리고 있다.

    이지혜(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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