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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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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듣기, 그럼에도 듣기- 신현목 (변호사)

  • 기사입력 : 2023-04-03 0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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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현 목 변호사

    휴대전화가 울린다. 전화 속 목소리에는 하소연도 있고 인생사 넋두리도 있다. 오랜 시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사건에서 벗어난 증거가 없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안다. 목소리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다. 된시름으로 잠 못 이루고 마음 기댈 곳을 찾아 어렵사리 연락을 하였을 것이다. 잘 듣는 것으로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도, 심란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도록 그저 정성껏 들어본다.

    고향에서 소 먹이던 시절까지 돌아간 목소리를 사건으로 다시 데려온다. 샛길로 빠지려는 목소리의 고삐를 다잡으며 귀담아듣고 나니,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작은 목소리를 정성스레 서면에 담고 애쓰다 보면, 우리의 목소리가 법원에까지 잘 닿아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어렵다며 낙담한 목소리가 기쁜 표정으로 고맙다고 하였을 때, 모든 시작은 듣기에 있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목소리는 이내 사라지지만 무거움은 남는다. 때로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다. 법원에 기록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읽고 쓸 수 없는 목소리를 다 받아내지 못하고 목소리의 무거움에, 목소리의 날카로움에 힘들어할 때도 있다. 온갖 목소리에 능통한 선배 변호사님을 보며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하다. 비단 변호사 일에 국한되지 않고 중요한 게 있다. 오만과 편견에 빠지지 않고 몸을 낮추어 목소리에 경청하는 것, 마음과 힘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목소리의 아픔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들어야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고, 사건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듣기는 시작이지만 잘 들으려면 모든 일이 그렇듯 정성이 필요하다. 꾸준히 정진할 수밖에 없다.

    벚꽃이 절정이다. 마스크를 벗고 4년 만에 열리는 진해 군항제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이 좋은 봄날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흩날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 아래 걷는 사람들은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까.

    신현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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