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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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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0.1의 1224제곱- 양영석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 기사입력 : 2022-10-17 08: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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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 영 석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최근 1부터 55까지 숫자 중 6개를 고르는 방식의 필리핀 ‘그랜드 로또’ 복권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총 433명이 나왔다. 1등 당첨자가 이례적으로 많은데다 당첨번호 ‘9, 18, 27, 36, 45, 54’도 9의 배수로 추첨 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필리핀 로또복권은 45개 중 6개의 추첨 번호를 맞춰야 하는 한국 로또와 유사하지만, 숫자 구간이 더 넓어서 맞출 확률도 떨어진다. 국내 1등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약 814만분의 1, 필리핀의 경우는 약 2900만분의 1이다. 특히 이번처럼 당첨자가 많은 사례가 드물다. 한 전문가는 로또 참가자가 1000만명이라고 가정할 때 433명의 당첨자가 나올 확률은 0.1의 1224제곱이라고 추정했다. 사실상 0에 가깝다 보니 조작설이 제기되고 있다.

    ▼필리핀 로또의 조작론 대두는 실제 일어날 확률이 극히 낮은 탓도 있지만 필리핀 사회에 만연한 부패에 기인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현 대통령은 36년 간 독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사가 이뤄져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유야무야 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만에 하나 복권을 운영하는 국가기관이 조작을 했다면 국민을 우습게 보고 기만했다고 봐야 한다.

    ▼필리핀은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다. 상위 7%의 부유층이 전체 국토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국가 빈곤율(2021년)은 23.7%로 전체 인구 1억1000만명 중 2600만명이 최소한의 생계비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교육 불평등 등으로 계층 이동의 기회조차 없어 많은 사람들이 사봉(닭싸움) 도박이나 복권으로 대박을 노린다. 만약 이번 로또 당첨이 조작이라면 국가가 서민들의 실낱 같은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은 셈이다. 그런데도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잠잠하다. 국가기관의 비리에 침묵하는 국민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양영석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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