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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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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강- 황인숙

  • 기사입력 : 2022-07-21 08: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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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단호한 어조가 마치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낙비 같다. 속이 후련하다. 아니 너무 매정한가? 사실 나는 지금 당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무기력하고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다. 그러니 마음 둘 곳 없어 외롭다거나,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 괴롭다고, 그래서 복장 터지고 애간장이 녹아 미쳐버리기 직전이라고 내게 말하지 마라. 진정한 위로는 사람이 아니란 걸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그렇다. 강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세워두기를 좋아한다. 강가에 서서 눈물 콧물 쏟아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강은 어떤 해답도 없이 들어주기만 한다는 걸. 그러다가 공감하듯 함께 흐느낀다는 걸. 강은 왔던 길을 되돌려 주며 달빛 별빛을 총동원해서라도 리스타트(restart), 다시 시작하게 한다는 걸.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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