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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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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그 많던 기원은 어디로 갔을까? - 장석주 (시인)

  • 기사입력 : 2022-04-14 21: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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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을 사랑한 사람으로 동네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며 승부에 몰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마다 바둑 두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었다. 바둑에는 패배의 쓰라림이 있고, 승리의 달콤한 쾌감과 명예로움이 있다. 동네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바둑 인구가 줄고, 기원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일 테다. 승부의 짜릿함에 취해 기원에서 낮밤을 흘려보낸 기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다.

    바둑은 흑백으로 나뉜 상대가 가로 세로 19개의 줄이 교차하는 361군데 중 한 곳에 돌을 착점하며 누가 더 많은 집을 차지 하느냐로 승부를 가른다. 바둑판 네 군데 귀에 화점이 있고, 중앙엔 천원이 있다. 바둑판은 하나의 우주를 표상한다. 여기에는 동양의 우주관과 철학이 집약돼 있다. 바둑 규칙은 단순한데, 그 수의 깊이는 헤아릴 길이 없다. 돌 하나는 무한이고 그 변화의 깊이는 심연에 가깝다.

    바둑과 장기는 그 규칙이 딴판이다. 장기는 차, 포, 마, 상, 졸로 나뉘고 그 이동 경로가 다르다. 차는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졸은 뒤로 물러설 수 없고 오직 한 칸씩만 전진한다. 바둑의 돌은 그 자체로 동등하다. 다만 돌과 돌은 상호연관 속에서 그 가치의 경중이 달라진다. 어느 지점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어느 돌은 폐석이 되고, 어느 돌은 요석이 된다. 돌이 한 점 한 점이 놓일 때마다 판세가 요동치며 천변만화가 일어난다. 승부는 한쪽으로 기울다가 뜻밖의 변수로 뒤엎어지며, 국면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둑은 영토를 두고 이익이 상호 충돌하는 까닭에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돌을 놓을 때마다 효율을 따진다. 수의 계산에 밝고, 직관과 논리에 뛰어나며, 판세를 읽는 힘과 자기 제어 능력이 좋아야 바둑이 세질 수 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이다. 수 없는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한 점 한 점을 놓아야 한다. 초보자는 정석(定石)을 외우고, 행마법과 기리(棋理)를 익혀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력에 이르면 이마저도 다 버리고 자유로운 발상을 기반으로 자기 바둑을 둬야 한다.

    바둑은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이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 바둑은 교양이자 예도, 인격을 갈고닦는 수행 법이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오늘날 시나 무용, 기악 합주, 공놀이, 수수께끼 풀기 따위가 그렇듯이 바둑엔 딱히 큰 쓸모가 없다. 프로기사가 아닌 다음에야 바둑이 소득 수단이 될 수는 없고, 그게 생물학적 번영에 보탬이 되는 경우도 없을 테다. 바둑은 쓸모없음으로 빛나는 것들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바둑에 푹 빠진 것은 내 안의 놀이 본능 때문일 것이다. 왜 바둑이 좋았을까? 바둑을 둔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분한 것은 우리가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갖가지 놀이에 미치거나 열광한다.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회화 훈련을 받는다. 바둑은 놀이이되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면을 고양시키는 측면이 있다. 문화사가인 호이징하에 따르면, 놀이는 ‘어떤 표출이며, 형상화이며, 대리적 현실화’이다.

    한 동네에 살며 기원에서 만나던 H교수도, 작가인 S선생도 세상을 떠났다. 두 분 다 바둑을 놀이를 넘어선 마음의 수련이고, 지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 방편으로 즐겼다. 그분들 떠나고 바둑 둘 상대가 없었다. 그분들과 일합을 겨루던 날은 한가로운 추억이 됐다. 바둑에서 배울 것은 많다. 바둑에서 욕심이 지나치면 필경 패배에 이르고, 평온함과 무심함으로 대국을 조망하면 승리에 이른다. 물러나 상대와 화평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고, 나아가서 힘을 겨룰 때가 있으며, 그것을 헤아리는 지혜가 깊을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바둑은 기술, 용기, 힘뿐만 아니라 집중력, 응용력, 창의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에게 두루 필요한 덕목들이다. 어린 아들이 있다면 바둑을 가르치겠다. 바둑이 청정한 도락이고, 균형 잡힌 인격과 교양을 갖추는데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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