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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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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는 이상한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장석주(시인)

  • 기사입력 : 2022-03-17 20: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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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이들이 떠나고 시골에 남은 건 노인들, 공허하게 짖는 개들, 여기저기 펄럭이는 폐비닐, 함부로 나뒹구는 농약병뿐이다. 시골은 조개무지, 고인돌, 옛사람의 주거지만 남은 유적이나 다름없었다. 촌락공동체가 깨지고, 마을엔 스산한 적막감이 감도는 시골에서 나는 10년 넘도록 혼자 살았다. 나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시골에서 집을 짓고 생활을 꾸리며 혼자 사는 자의 슬픔과 기쁨을 겪었다.

    봄에는 영산홍이 피었다 지고, 봄비가 다녀갔다. 봄비 내린 뒤엔 원추리 싹이 지표를 창끝처럼 밀어 올리고, 새로 돋는 작약 움은 착한 소년 같았다. 영양분을 듬뿍 머금은 노오란 햇빛 아래 작약꽃이 피고 나비는 작약꽃에 앉아 우표만한 날개를 접었다 폈다. 버드나무 가지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직박구리가 감나무 가지에 와 울던 날엔 나무시장에 가서 묘목 몇 그루를 사다 심었다. 귀한 꽃을 보려고 사오 년 생 모란과 배롱나무를 심었지만 뿌리가 냉해를 입어 말라 죽었다.

    이른 봄날의 냉기 속에서 시린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장자와 노자를 읽고,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이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들춰보거나 그 어렵다는 들뢰즈의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그 외로운 날에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 목전의 필요와는 상관이 없는 무용한 독서였다. 그것은 영원에 가 닿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와 닮았다. 독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다. 어쩌면 그것은 침묵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서재에서 책을 읽는 동안 산에서 내려온 산개구리는 하천에서 시끄럽게 울었다. 호오이, 호오이. 첨엔 낯선 새가 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한두 해 지난 뒤 누군가 그게 짝짓기 할 짝을 찾는 산개구리 소리라고 알려줬다. 봄날 오후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온 좁쌀막걸리 몇 잔을 들이킨 뒤 불콰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혼자 누워 있자니, 또 외로움이 밀려 들었다.

    혼자인 날에도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면 김치전을 부치고, 냉이된장국을 끓였다. 갓 지은 밥은 따뜻하고, 냉이된장국에서는 냉이에서 나온 향이 코끝으로 확 달려들었다. 런닝셔츠를 입고 웃자란 풀을 벤 여름날엔 물을 만 밥을 짭짤한 오이지와 함께 먹었다. 밥을 떠서 목구멍으로 넘길 때 혼자 밥 먹는 슬픔도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가을엔 고등어 한 토막을 굽고 청국장을 끓였다. 혼자 먹는 밥은 늘 소찬이었다. 식사와 취침 시간은 늘 일정했다.

    여름 오후, 낯선 한 비구니 스님이 내 거처를 찾아왔다. 내 거처와 멀지 않은 암자에 산다는 비구니 스님의 방문은 이상했다. 그이가 나를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이는 내게 썼다는 편지를 읽어주고 떠났다. 내게 썼다는 편지인데, 내게 건네주지는 않았다. 그게 전부다.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이가 그 뒤로는 찾아온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겪은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시골에 혼자 사는 자에게 외로움은 일종의 진공 상태다. 외로울 때면 머리를 벽에 찧었다. 내 안은 텅 빈 채고, 어느 날은 누군가를 갈망했다. 겨울 밤에 겪은 그 갈망은 타인과 살을 맞대고 숨결을 나누고 싶은 타는 듯한 욕구였는데, 그게 누군가가 명명한 ‘피부 갈망’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겪은 외로움은 사회연결망에서 떨어져 나와 겪는 관계와 친밀함의 부재에서 비롯된 감정의 홍역이었는지도 모른다.

    콕 찍어 선택하지 않아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내가 혼잣말로 외롭다, 외롭다고 하면, 하늘에선 선물처럼 눈이 내렸다. 외로움이 독수리 같이 덮쳤을 때 내게 날갯죽지가 있다면 하나쯤은 부러뜨리고 싶었다. 내 외로움은 4만5000년이나 되는 고색창연한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낭만적 은둔의 날에 겪은 외로움은 감정의 사치였다. 나는 혼자로써 충만했으니, 외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나만의 자유를 누린 시간이었다. 입안에 사탕을 녹여 먹듯이 나는 외로움을 삼켰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과거가 돼버린 그 시절에 나는 혼자 이상한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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