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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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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벚꽃고뿔 - 이월춘

  • 기사입력 : 2022-02-24 08: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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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할아버지를 못 보고 자랐다

    평생 할배! 소리 한 번 해보지 못해

    손자 어리광 받는 조카들이 부러웠다

    아들도 제 조부를 보지 못했다 나이 들수록

    긴 담뱃대로 놋재떨이 땅땅 두드리며

    집안의 줏대를 수염으로 가르치시는 조부가 그리웠다

    오늘 벚꽃 터널 경화역 주변을 거닐다가

    하르르 떨어지는 화무십일홍의 낱말들

    저것은 내가 잃어버린 설움일까 섭리일까 사랑일까

    세상은 온통 노랗거나 붉은 설렘의 꽃산인데

    하릴없이 마음의 바깥에 몸을 내주는 속앓이로

    철길처럼 뻗어있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 고뿔은 감기의 순우리말입니다. 코에 불이 났다는 게지요. 나의 조부께서는 을사생,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태어나셔서 구십여 년을 사셨습니다. 나의 조부께서 사셨던 한평생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거의 모두 겪은 삶이었습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장손이라는 이름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여기 “평생 할배! 소리 한 번 해보지 못해/ 손자 어리광 받는 조카들이 부러웠다”는 시인이 있습니다. “긴 담뱃대로 놋재떨이 땅땅 두드리며/ 집안의 줏대를 수염으로 가르치시는 조부가 그리워” 고뿔을 앓는 시인이 있습니다.

    이런 그리움은 고뿔처럼 늘 불쑥 찾아오지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더욱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곧 벚꽃이 만발한 봄이 오겠지요. 진해는 온통 벚꽃천지가 되겠지요. 이 좋은 봄날 우리는 그리움에 자주 고뿔이 든답니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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