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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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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늦은 발견 - 김정숙

  • 기사입력 : 2022-02-10 0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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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과 가을 사이 꽃피고 잎 지는 사이

    가지와 가지에 열매가 익는 사이

    비로소 곱게 물이든

    인고의 시간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풍경들

    자세히 볼 수 없는 어느 별의 안부를

    오래된 책갈피 속의

    연서처럼 바라본다


    모나고 뾰족했던 내 삶의 언덕에

    꽃씨를 뿌려놓은 그대의 손길은

    아직도 마저 못 풀은

    내 인생의 숙제임을

    ☞ 가을과 가을 사이’는 일 년이다. 봄부터 겨울까지가 아니고, 시인은 가을에서 다시 가을이 오기까지를 노래한다. 산과 들에 형형색색으로 물든 갖가지 나뭇잎들이나 ‘가지와 가지에’ 잘 익은 열매들이 탐스럽기까지, 그 과정을 헤아리게 한다. 꽃과 열매가 그저 붉어졌거나 그저 달콤해졌을 리 없다. 발아의 아픔도 한여름 뙤약볕도 태풍과 눈보라의 흔들림도 이기고 견디며, 떫고 신 속내를 삭혀내느라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겠는가? ‘비로소 곱게 물이 든/인고의 시간’인 것이다. 청량한 가을 햇살 속에 빛나는 자연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런 어울림이야말로 가을이 주는 아름다운 완성이다.

    상념에 잠겨있는 시인의 모습을 따라가 본다. 그 삶의 언덕엔 어떤 빛깔의 시간들이 스며들고 어떤 인고의 열매가 향기롭게 익었을까? ‘모나고 뾰족했던 내 삶의 언덕에/ 꽃씨를 뿌려놓은 그대의 손길’로 인해 여름의 한 귀퉁이에서 피우지도 삭히지도 못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어정쩡히 서성이는 시간, 혹은 우리들의 모습이 스친다. 별의 안부 같은 ‘오래된 책갈피’ 속을 발견하고, 지난날 무심히 지나친 사소한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문득 우리 삶의 ‘꽃씨’를 생각한다. 세상과의 조화를 위해 반성하며 더 겸손하고 더 진솔한 모습으로 익어가는 시인의 가을을 좇는 성찰의 시간. 그 꽃씨를 잘 키우는 것이 어찌 시인만의 ‘숙제’일까?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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