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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3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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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이병률

  • 기사입력 : 2022-01-20 08:07:09
  •   

  •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바깥 유리면이었다

    누구를 들여다보려 했을까

    혹은 무엇을 말하려다 무심결에 이마가 닿은 걸까


    안쪽 세상으로 밀어놓지 못한 자국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닦인 적이 없다


    거리가 어두워지면 안으로 엷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

    그때마다 이마 자국은 한 번 더 선명해진다


    이마에 유리자국이 찍힌 것이 아니라

    유리에 이마자국이 찍힌 것뿐인데


    그래도 된다면 자국은

    그 유리면이 박살이 나서 쓸모없게 될 때까지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이마 자국 안쪽 반대편에는 영혼의 모든 일들이

    스스로를 휘젓고 있을지 몰랐다


    아주 깊은 밤 가끔 차량의 걸걸한 불빛들이

    이마 자국을 비추기를 마친 시각


    나는 그 이마에 내 이마를 대보았다

    이마를 마주대야만 안쪽의 무언가가 보일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우리는 지금 여전히 단절의 계절에 서 있습니다. 외로움에 중독되고 ‘혼자’에 익숙해져 가는 중입니다. 견고해지는 고독 때문일까요. 미묘한 사물에도 집요해지는 습관이 생기곤 합니다.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도, 그 이마에 내 이마를 대어보는 것도 어쩌면 혼자라고 느낀 사람의 몫일 겁니다. ‘혼자가 혼자에게’ 중얼거리는 언어의 기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마 자국’이라니, 참 빛나는 감성입니다. 밤이 깊어질 때를 기다려 내 이마를 갖다 대어봅니다. 언젠지 모를 희뿌연 이마 자국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무심결에 찍힌 자국은 지문처럼 뚜렷하지도 않고 예상 외로 면적이 작습니다. 이 또한 ‘영혼의 모든 일들이 스스로를 휘젓고 있을’ 즈음 새겨진 증표라 여겨집니다. 이 밤! 바깥쪽으로 밀어내지 못한 이마 자국 하나가 달빛에 들키고 맙니다. 천융희(시인)

    ★오늘부터 ‘시가 있는 간이역’의 새로운 역장으로 천융희 시인이 함께 합니다. 천 시인은 2011년 시사사로 등단했으며, 시집 ‘스윙바이’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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