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성산칼럼] 진실의무-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2-01-12 20:14:19
  •   

  •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우먼 앤 머더러’라는 영화를 알게 됐다. 1991년 발생한, 프랑스 경찰사에 등록된 제1호 연쇄살인범이자 바스티유 야수라고 불리던 기 조르주의 검거와 재판 과정을 그린 다큐 영화로 실존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도 추측되듯이 이 연쇄살인범의 검거와 재판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 번째 피해자의 어머니는 딸이 살해당한 후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발 벗고 나서고, 여성 최초로 강력부 팀장으로 임명된 여성 경찰관은 끈질긴 수사로 끝내 연쇄살인범 기 조르주의 존재를 밝히고 검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미 수사 과정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DNA를 확보했음에도 바로 검거할 수가 없었다.

    경찰에서는 당연히 연쇄살인범 검거를 위해 DNA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개인정보를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 시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빠르게 진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경찰이 일일이 대조하는 수작업을 거쳐야 했고 그 사이인 1991년부터 1997년까지 7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됐다. 더욱이 1997년에는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다이애나비 사건의 수사로 인해 연쇄살인범 검거에 투여될 수사 인력마저도 부족하게 됐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강력팀의 여성 팀장의 노력을 1998년 드디어 연쇄살인범 기 조르주가 검거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흉악범인 연쇄살인범의 빠른 검거보다 개인의 정보를 더 중요 시 여기는 문화 자체가 낯설었다. 하지만 더 낯선 것은 연쇄살인범의 검거 이후로 이뤄진 재판 과정이다. 특히 기 조르주를 변호한 부부 변호사가 인상적인데, 그중 여성 변호사는 기 조르주와 인간적인 신뢰를 유지하면서 그가 여성에게 배신당하는 사태를 겪지 않도록 노력했음을 고백했다. 법정에서 DNA 증거가 없는 범행에 대해 부인하는 기 조르주를 위해 여성 변호사는 계속 무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정주의로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아니라 상담사의 상담 내용 같은 변론을 통해 기 조르주의 인생에서 뒤틀린 부분들을 짚어 나갔다. 그리고 부부 중 남편 사는 법정에서 기 조르주가 범행을 자백할 수 있도록 인도했는데 한 명 한 명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당신이 했습니까?”라고 물었고 기 조르주는 “예”라고 답했다. 법정에 출석했던 피해자들의 어머니 중 한 명은 기 조르주의 반복적인 범죄 시인이 끝났을 때 고맙다고 응답했고 기 조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 조르주는 자기도취적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았었고 2001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흔히 예상되는, 원망과 분노, 슬픔이 가득한 법정의 모습이 아니었고 변호사 또한 피고인인 기 조르주가 결국에는 범행을 시인하고 재판에 협조하도록 인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형사소송법의 지도 이념 중 실체적 진실주의라는 것이 있다. 법원이 당사자가 제출하는 증거나 주장 등에 구애받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소송법상의 원리인데, 이를 위해 검사는 물론 변호인도 협조할 의무가 있다.

    변호사도 변호사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진실 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나, 신체 구속을 당한 사람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것 또한 권리이자 의무인 변호인으로서 어디까지 협조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특히 형사소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후에 사실을 재구성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기에 사건을 온전히 재현해 내고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심지어 피고인이나 피해자조차도 불가능한 일로써 때로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먼 앤 머더러’가 보여준 다소 낯선 재판 과정은 변호인으로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알려주는, 변호인의 조력권과 진실 의무 사이에서 방황될 때 길잡이가 돼주는 모범답안 같았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