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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고마 됐다. 놀자- 김재엽(시인)

  • 기사입력 : 2013-01-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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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게 친구. 달맞이로 유명한 해운대에서 계사년을 맞았네. 전국에서 모여든 50만 인파가 가슴으로 해맞이를 하는 모습, 참 뭉클했다네. 자네도 기억하겠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주문진항에서 처음으로 봤던 그 거대한 해돋이의 감격을 말이야. 해운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내가 첫발을 디딘 곳이라, 새롭게 맞은 사위 부부에게도 의미 있는 희망의 단추를 꿰게 하고 싶었지.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지. 친구. 자네와 헤어진 후 창원 땅을 밟은 것이 1978년 12월이었다네. 친구들은 더러 회사도 옮기고 사표도 썼는데 난 용기도, 잘하는 것도 없어 묵묵히 세월만 채우다 벌써 35년이 갔다네. 작년만 해도 266만 명 넘는 사람이 직장을 그만뒀다던데, 그런 현실에서 정년까지 한다면 성공한 인생이지.

    나는 기계공고가 뭔지 모르며 입학했고, 공장과 회사가 똑같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참 어설프고 고달팠지. 아마 처음 받은 시급이 340원이었을 거야. 눈물겨운 세월의 버팀목은 바로 ‘대망의 80년도’라는 구호였다네. 80년도만 되면 ‘마이카시대’는 물론, ‘기능인이 우대받는 세상’이 된다기에 잔업에 특근, 철야까지 젊음으로 버티고 희망으로 견뎌낼 수 있었지.

    친구. 넌 87년에 이민을 갔다고 했지? 이젠 미국생활이 더 편하겠네. 기회의 땅이라지만 많이 힘들었지. 나도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 후회는 없지만, 이제는 좀 놀고 싶다네. 이력서 한 번 안 쓰고 처음 직장에서 지금까지 왔으니 ‘참 복도 많은 놈이다’ 하겠지만 돈 버는 일이 어찌 녹록했겠는가. 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면 반장, 직장으로 진급할 꿈도 꾸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대학졸업장 있는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더라고.”

    친구야. 너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공고생의 설움을 잘 모르지 임마. 그래서 배워야겠구나 생각했지만 회사 눈치가 심했다네. 애까지 있는 내가 잔업을 포기하고 배운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 그렇지만 직업훈련소를 시작으로 20년 남짓 회사 학교 가정을 밤낮으로 쳇바퀴처럼 돌면서 사서 고생을 했어. 그 덕에 쇠공장과는 거리가 먼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지만. 우습지. 지나온 날들 생각하면….

    그나저나 친구야. 시집간 딸이 올 삼월이면 손녀를 안겨준다니, 벌써 할아버질세. 친구야. 아까 “놀고 싶다”는 말 무작정 쉬려는 것은 아닐세. 오해 말게나. ‘의미 없이 사는 것은 죄’라는 말도 있는데. 불한당(不汗黨)으로 사는 것은 안 될 말이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들어봤지? 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잖아.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처럼 더 치열하게 살려고 그래. 장로가 잘 노는 사람인데 어쭙잖은 놀이보다는 즐기는 일로 채워간다면 얼마나 멋지겠나. 그래서 올 화두는 느슨한 끈 다시 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으로 정했어.

    넌 무슨 말씀을 좋아하니? 난 중학교 때부터 맘속에 간직했던 말이 있어. 바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이었지. 우리 집의 가훈인 ‘늘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도 그 연장선상이지. 너도 나도 앞으로는 더 행복하게 살자꾸나. 억지로라도 여유를 찾고 누려보자고. 내가 먼저 행복하고 즐거워야지 뭐. 날마다 이루려는 고민만 하고, 그 기쁨과 보람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룸의 수고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나. 베이비부머인 우리가 성공의 높이만 추구했다면 에코부머인 자녀들에겐 다양한 삶의 깊이도 알게 해줘야 안 되겠나.

    보고 싶은 친구야. 우연히 SNS에서 네 희끗희끗한 머릿결과 얼굴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이렇게 편지까지 쓸 수 있어 더 고맙고. 이 편지도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니 답장하려고 애쓰지 말게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우리 약속 하나 하세. 자네도 사진 열심히 찍고, 나도 글 부지런히 써서 함께 디카시 전시회도 열어 보세나. 그럼 멋진 남편, 좋은 아버지로 만나길 소망하며. 살롬.

    김재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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