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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피에타- 윤덕점(시인)

  • 기사입력 : 2012-09-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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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에타’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가는 내게 동생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비릿해서 싫다고 한다. 그 말은 김 감독의 작품이 그만큼 사실적인 날것의 인간 본성에 닿아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단지 본능에 충실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강도(이정진 역)와 과거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어머니(조민수 역)가 이끌고 가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일부를 받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기진 삶을 놓치지 않고 찾아낸 감독의 시선이 따뜻했다. 던져진 환경에 따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부모의 사회적 책임을 떠올렸다.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사회악으로 세상이 온통 뒤끓고 있는 이때, 역설적이게도 한 편의 영화가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굳이 맹자의 성선설이나 순자의 성악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생아의 첫울음은 고고하고 신비롭다. 그 울음 속 어디에 악이 있고 선이 있는가? 처절한 고통을 지난 시간과의 싸움에서 피어난 투명한 고고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사람의 탄생은 축복이다.

    삶은 그런 순정한 상태에서 똑같이 출발하지만 양육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그것은 부모의 역할, 양육 과정의 다양성이 영향을 미친 까닭이다. 부모가 어떤 교육관으로 자식을 키우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주입식 교육에 과연 자녀들이 동의하며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잘 커갈지는 알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현장에서 아이의 부모를 쳐다보게 된다. 적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아이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며칠 전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소위 강남 부유층 엄마들이 아이의 외국인학교 입학을 위해 돈을 주고 위장으로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문제, 또 미모지상주의에 부응하여 딸아이의 성형수술을 무분별하게 하는 행위 등은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런 일들은 우리들의 인식이 내면의 강건함이나 단단함보다 외형의 팽창과 그럴듯한 포장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에타’의 강도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과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간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핏덩이를 버린 엄마가 있다. 지금도 원치 않은 임신으로 제2, 제3의 엄마가 불안에 갈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르웨이에서는 학생이 미혼모일 경우 아이와 함께 등교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이 같이 아이를 기른다고 한다.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 내는 사회공동체 의식이 어쩌면 합리적인 해결책일까?

    세계인들을 온통 강남스타일의 말춤 속으로 끌고 들어가 라틴음악의 본고장에서 당당하게 ‘대한민국 만세’라고 말하는 싸이나,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레드카펫 위를 평소 신던 신발을 신고 들어가 수상 소감으로 ‘아리랑’을 부르던 김기덕 감독, 올림픽에서 그만의 독특한 개인기로 금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등 우리에게는 수많은 특출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물론 타고난 자질도 좋았겠지만 자식을 지지하며 온 정성을 다한 부모가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피에타’란 말은 이탈리아어로 ‘용서’ 또는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한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일, 자식을 사람답게 잘 키우는 일에 모두가 자비를 베푼다는 신념으로 정성을 기울이는 세상이기를 소망한다.

    윤덕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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