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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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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생님- 안순자(수필가)

  • 기사입력 : 2012-05-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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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즈음엔 도처에 선생님이 넘쳐난다. 길 가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열에 아홉은 뒤를 돌아다본다는, 오래전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지금은 선생이 그렇게 흔한 호칭이 됐다.

    선생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학문적으로 덕망이 높은 사람 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위치의 사람이라고 돼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스승을 거치며 그 가르침으로 인해 오늘날 내 인격의 밑받침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 선생님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지 새삼 강조해 무엇하랴.

    이처럼 실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당연히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겠지만 그 사람들을 비롯해 주위로부터 선생으로 불리는 사람은 과연 위의 사전적 정의에 합당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미용실 안에서도 갓 들어온 수습생에게 선생이라 서로 부르고 있으며, 백화점 매니저가 일을 돕고 있는 종업원을 보고 ‘선생님’이라 고객 앞에서 칭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건 고객이 자신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길 바란다는 묵시적인 바람이 그 호칭 속에 내재돼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당연히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나름대로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이라고 대우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긴 세월 동안 노력한 결과를 높이 사는 의미에서 마땅하다 하겠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듣기를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부를 때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기에 애매한 경우에 성이나 직함 뒤에 선생을 붙여서 부르면 대체로 무난하게 넘어간다.

    그래서 상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면서 근래에는 전화로 문의를 할 때도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 따라 원래 뜻과 다르게 호칭이 사용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언어의 변천으로 봐야만 할까?

    초대권이 생겨서 성산아트홀 대극장에 ‘송해 콘서트’를 보러 갔다. 게스트로 방송인 이상벽, 개그맨 김학래, 이용식, 엄용수 등이 출연했다. 평소 엄용수를 좋아하던 나는 생각지도 않은 그의 출연으로 지루하게 여기던 쇼에 흥미가 생겼다. 그의 박학다식함과 무궁무진한 암기력이 경이로웠다. 공연이 끝난 후 굿바이 무대를 마치고 무대 뒤로 나오던 그들 중 엄용수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엄용수씨’ 하니 그는 바쁜 듯이 손만 내밀어 악수를 하고는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급히 분장실로 들어갔다.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서와는 달리 딱딱한 모습이었다.

    공연장 밖에서도 그와 비슷한 광경이 있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관객 중 어느 분이 이상벽씨를 보고 ‘이상벽씨 반갑습니다. 악수 한번 합시다’ 해도 대꾸 없이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팬들에게 악수하고 부드럽게 응해주기를 바랐는데, 이제 공연은 끝났으니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것인가?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연륜으로 봐도 그렇고 개그계나 방송계에서도 관록이 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연예인들에게 누구누구 또는 ‘○씨’ 하며 예사로 이름을 부르지만 듣는 그들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용수 선생님’ ‘이상벽 선생님’ 하고 존칭을 썼더라면 그렇게 찬바람 나게 지나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옛날 말이 있다. 고깃집에 가서 ‘이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하는 것과 ‘이가놈아, 고기 한 근 다오’ 하는 것과는 고기의 양이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상대를 칭할 때 터무니없이 우대하는 호칭을 쓰는 것도 어색하지만 예의 없이 무심코 대한 적도 은연중 많지 않았나 싶다. 자칭 학식이 있다는 이도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예사로 하대를 하는 경우도 더러 봤다. 그건 즉 자신의 인격이 드러나 보이는 것인 데도 사람은 더러 그런 우를 범하기도 한다.

    스승의 날에 즈음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적절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며 나 자신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안순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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