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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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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8) 사천

  • 기사입력 : 2006-08-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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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길 산길 따라가니 옛터의 흔적만…


    남해고속도로 축동 나들목에서 들어서니 가화천은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누런 황톳물을 강둑이 넘치도록 쏟아내고 있었다. 여름은 화려한 꽃의 계절이다. 길가에는 무궁화가 청초한 모습으로 빗물을 머금고 가로수처럼 줄지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차창을 열고 눈길을 돌리면 달맞이꽃. 토끼풀. 흰색과 보라색의 도라지꽃. 노란 호박꽃. 참나리꽃에 원추리. 물봉선화도 한껏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가화천교 옆 산등성이 '사천매향비'

    ▲ 사천매향비

    가화천교에서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다가 작은 산등성이를 넘으면 사천매향비이다. 매향(埋香)이란 하늘과 땅의 신을 모시기 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거나 향을 피우는 의식을 말하며. 이때 의식을 행하는 과정 및 시기와 관련 집단 등을 기록한 비를 매향비라고 한다. 비석은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비문을 새겨 놓았다.

    비문의 내용은 고려 후기 사회가 혼란하던 때에 불교 승려들을 중심으로 4천100여 명이 계(契)를 조직하여. 왕의 만수무강. 나라의 부강. 백성의 평안 등을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매향의식을 하였다.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워졌으며. 고려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1977년 곤양면 흥사리의 산에서 발견되어 보물 제614호로 지정되었다.

    사천매향비가 있는 곳은 비만 오면 비석이 잠기는 수해지역이다. 문화재청에서 사천매향비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라고 고집하여 이전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향비의 받침대를 높이는 방법이라도 강구하여 귀중한 문화유산이 상습적으로 물에 잠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 완사역·다솔사역

    낮은 산과 들판이 행복한 어울림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논에는 한가로운 백로가 모이를 찾고 있었다. 물에 잠겨있는 매향비를 두고 좁은 산길을 찾아 넘어서니. 진양호의 끝자락 사이로 완사역이 보였다.

    최은애 시인은 그의 처녀 시집 ‘벚꽃에 내리는 눈은 벚꽃이 된다’에서 ‘완사역’을 “신혼부부 세들어 사는 집 같다”라고 했다. 아담하고 시골 고향집 같은 기대를 하고 찾았던 완사역은 수몰지역에서 1999년 이전하여 현대식 역사로 변해있었다. 발길을 돌려 찾아간 다솔사역은 잡초만 무성한 채 역이 있었다는 역표지만 서 있었다. 세월은 이렇게 옛것을 지워버리고 떠나는가 보다. 시골 역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찾아갔던 다솔사역의 흔적은 이제 마음속에만 간직되어 있다.

    소곡산 우거진 산길엔 '세종 단종 태실지'

    ▲ 세종대왕 태실지. 단종 태실지

    장맛비가 내리는 들판에는 비를 뚫고 자란 벼 포기들이 녹색 그림물감을 칠한 듯 싱그럽다. 세종대왕 태실지는 숲이 우거진 산길이 있는 소곡산에 있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던 해인 1418년에 좋은 터를 찾아 임금(세종)의 태를 안치하였으나. 1929년에 일제가 태실임야를 민간인에게 팔고. 태실은 경기도 양주로 옮겨갔다. 현재 세종대왕의 태실 터에는 민간인의 무덤이 들어섰으며. 태실비와 태실석재 일부만이 산자락 길가에 모아져 있다. 단종 태실지는 세종대왕이 임금 자리에 오른 지 23년(1441)에 단종이 태어나자. 자신의 태실 앞산에 태실을 안치토록 하였다. 임진왜란 때 세종대왕의 태실은 거의 파괴되었으나. 규모가 작은 단종 태실은 화를 면했다. 현재 태실지 산비탈에 석물들이 민가의 묘지에 밀려 흩어져 있다. 당시에는 감히 가까이 가기도 어려웠을 왕가의 태실지는 옆으로 쓰러져가는 표지판이 세월의 무심함을 받치고 있다.

    '다솔사' 적멸보궁 보기 드문 와불상 봉안

    차밭 지나 보안암에는 고려 석굴 눈길

    ▲ 다솔사. 보안암 석굴

    원시림으로 우거진 숲을 따라 한가롭게 찾아가는 절집 답사는 고즈넉함이 묻어난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년) 연기조사가 창건해 영악사라 불리다가. 선덕여왕 5년(63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불리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차장 한쪽에는 언제나 이웃 마을 할머니들이 고구마. 옥수수. 콩. 말린 나물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강돌로 다듬어진 계단을 몇 개 올라서면 육중한 대양루가 앞을 가로막는다. 빗방울을 피해 대양루 토방에 올라 절집을 감싸며 내리는 안개에 함께 젖어 보았다. 화단에는 치자나무가 유백색의 꽃을 달고 허공에다 제 존재의 진한 향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고. 대양루 앞마당으로 오르는 한편에 거북이 몸통 같이 생긴 자연석 위에 비신과 이수가 놓여있는 다솔사 중건비가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한단 높은 곳에 대양루와 마주보고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본래 대웅전이었는데.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에 후불탱화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증개축하였다. 적멸보궁 안에는 보기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 모습인 옆으로 누워있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최범술(1904~1979)은 다솔사 앞마을에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이곳에 머물면서 절 뒤편에 3천여평의 차밭을 일구어 반야로차를 만들어냈다. 응진전은 일제 때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수도하던 곳이며. 절집에서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 운동을 펼쳤던. 소설가 김동리는 낙향하여 이곳을 배경으로 1963년 단편소설 ‘등신불’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다솔사 차밭을 옆에 두고 오리쯤 봉명산 방향으로 산책로를 따라 30분쯤 걸어가면 보안암이 나온다. 보안암에는 비구니 스님이 있어 가는 길목에 쌓여있는 겨울용 장작을 옮겨 달라는 애교 섞인 문구가 있어. 그냥 가지 못하게 한다. 보안암에는 비록 규모도 작고 솜씨도 거칠지만 돌을 쌓아 만든 고려시대 석굴이 있어 눈길을 끈다.

    ▲ 비봉내 팜스테이. 비토섬

    차향기가 그윽한 다솔사를 뒤로하고 비토섬으로 가는 길에 `비봉내 팜스테이' 라고 하는 작은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보았다. 대나무를 이용한 염색. 숯가마. 죽순과 수액채취. 대밭에서 유정란 줍기. 대나무 뗏목타기체험과 도자기 빚기. 무인도 탐사 등을 통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신 개념의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곤양에서 군도 58번을 따라 별주부전의 전설이 내려오는 서포면 비토리 방향으로 들어섰다. 육지와 섬을 연결해주는 연륙교 위에서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비토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수려한 자연경관에 휴양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었다. 비토섬 끝자락에 서면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있는 토끼섬. 거북섬. 목섬이 줄지어 있다.

    '선진리왜성' 누각은 무너지고 흙 성벽만 남아

    ▲ 선진리왜성. 조·명군총

    사천 나들목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삼천포 방향으로 가다. 사천공항을 지나면 ‘선진리성’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러나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사천선진리왜성’이다. 이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당하기도 하였다. 돌로 만든 누(樓)는 무너졌고.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다고 하나. 풀이 우거져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선진리왜성 주차장에서 옛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커다란 조·명군총이 있다. 이곳에는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결전을 벌이다 희생된 수천명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무덤이다. 왜군은 그들의 승리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 죽은 군사들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내고. 목을 베어 묻어 큰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력이 약하면 백성들의 수난으로 이어진다.

    [맛집]
    ▲사랑골 횟집: 이도연- 사천시 서포면 선진리 ☏055-853-3737: 자연산 숯불장어구이. 활어회. 비토섬의 절경과 낙조 감상이 일품이다.
    ▲하나로 식당: 황윤자- 사천시 동동 서부시장 활어회 센터 내 ☏055-833-5819. 싱싱한 활어회로 만든 매운탕과 정식이 1인당 5천원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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