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6일 (화)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⑪ 목화의 고장- 산청

  • 기사입력 : 2005-12-28 00:00:00
  •   
  •   경호강 따라 유적답사 가는 곳마다 '자연미'


      여행이란 혼자 떠나는 것도 좋지만 부부가 함께 떠나는 것도 좋다. 더욱 좋은 것은 가족 모두가 함께 떠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산과 강의 행복한 어울림이 있는 산청으로 떠나는 답사길에 아들과 딸에게 반강제적 엄포를 놓았지만 할일이 많다고 하여 아내와 둘이서 떠났다.

     여러 지방과 산청 땅을 다니면서 자료를 많이 축적했는데.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가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덕분에 다시 가는 즐거움으로 나서는 겨울 순례길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의령을 거쳐 산청으로 가는 길가에는 가을 걷이가 끝난 텅빈 들판이 산과 어울려 겨울을 버티고 서 있었다.(사진:도전리 마애불상군)


      도전리 '마애불상군' 벼랑에 29구 불사 무리지어 새겨져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 유적지공원엔 '단계석조여래좌상'

      목화의 시초 '목련시배유지'… 문익점 덕행추모 '도원서원'

      신라 원효대사 창건 '율곡사'에는 보물 대웅전과 괘불탱

      [도전리 마애불상군~신등면 단계리] 생비량면 소재지를 지나면 경호강으로 흘러가는 양천강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 어은마을 표지석과 이정표가 함께 있다. 어은마을 방향으로 들어서면 아름드리 소나무 옆에 생비량 단위농협창고가 있다.

     창고 뒤로 해서 나지막한 야산을 따라 푸석푸석 소리를 내는 낙엽을 밟으며 20m쯤 올라서면 안내판이 서있다. 콘크리트 계단을 몇 개 내려서면 길 위 벼랑 바위에 29구의 불상이 무리지어 새겨진 마애불상군이 있다. 불상의 배치는 1층에서 4층까지 되어있고. 불상의 높이는 큰 것은 50cm이고 가장 작은 것은 3cm 에 이른다.

     불상의 모습(사진왼쪽 단계석조여래좌상)은 다양하지만 연꽃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소발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지만 각 부분의 마멸이 심하여 보호각 시설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마애불상군이 몇 군데 있지만 이곳처럼 무리지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른 아침 불상 정면을 비추는 햇살이 그윽하다. 꽁꽁 얼어붙은 양천강의 얼음에서 반사되는 햇살도 또 다른 아름다움을 안겨주었다.

      율곡사로 가는 길목 신등면 단계리에는 1597년 5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길을 갔다는 행로 유적지 공원이 동단마을에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공원 내에는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단계석조여래좌상이 보호각 안에 있다.

     불상은 수난을 당한 듯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갔고. 마멸이 심하여 겨우 윤곽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인근에 사는 이시화(46)씨의 말에 의하면 단계지방은 옛날부터 냇물이 넘쳐서 수해가 자주 일어나 이를 막기 위해서 조성되었다고 전해오는 불상인데. 장마로 인해 떠내려 온 것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마을 안쪽으로 내려서니 마침 단계장날이다. 옛날 시골 장터의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모습은 사라졌으나. 아낙네와 할머니들이 무공해 채소와 산나물을 들고 나와 흥정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생필품을 사서 손에 들고 삼삼오오 이웃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것에서 아직은 시골 장터의 훈훈한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단계리 일대에는 안동 권씨와 순천 박씨들이 주류를 이루고 살았던 한옥이 즐비하다. 경남지방 중류 농가의 가옥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민속자료 1점과 문화재 자료 2점이 있다. 단계 초등학교 교문도 딱딱한 콘크리트 교문을 옆에 두고도 한옥 형태로 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 새로운 친근감이 생겨났다.

      [율곡사] 눈이 내린 듯 뿌연 바위를 드러내고 있는 황매산(해발 1.108m)을 바라보며 지방도로 1006번 따라 차황면 방향으로 접어들면 신등면 율현리이다.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당산나무와 누석단이 신성히 모셔져 있고. 정수산 중턱에 율곡사(오른쪽 율곡사 전경)가 있다.

     오복달(79)할머니가 작은 보따리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들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라도 갈 마음으로 나섰다며. 막내아들이 39살인데 3살 때부터 동짓날이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율곡사를 다녀갔다고 한다.

     율곡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경순왕 4년(930)에 중창한 고즈넉한 사찰이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1기. 삼성각과 요사채만 남아있는 고즈넉한 작은 절집이다.

     까치밥도 안 되는 홍시가 꽃을 대신하고 있고 절집 추녀 밑에는 메주가 길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새소리와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경과 목탁소리만이 고요한 절집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율곡사 대웅전은 보물 제374호이고 괘불탱은 보물 제1316호이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 좌상은 유형문화재 제3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어졌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단층 팔작집이다. 대웅전의 위치가 산골짜기라 상승감을 강조하여 돌로 3층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놓은 건물은 기둥이 길고. 처마 끝을 활주가 받치고 있어 상승감이 돋보인다. 어느 절이나 전설 하나쯤은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율곡사 아름다운 대웅전에도 대목의 솜씨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데. 스님이 목침을 숨겼다는 것과 단청에 관련된 전설이 전북 부안에 있는 내소사 대웅전의 전설과 흡사해서 매우 흥미롭다. 예전에 찾아 갔을 때는 대웅전의 삼분합문 아래 칸에 전설 속의 스님이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았다는 사각형의 구멍이 있었다. 괘불탱은 대웅전 보관함에 있는데 1년 봄 가을 두 차례 대웅전 앞에 걸고 행사를 한다고 한다.

      절집 답사에서 차를 공양 받는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대웅전 앞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주지(일화)스님 방에 앉으니 밝은 햇살이 창호지를 타고 방 안까지 깊게 들어왔다. 스님께 전설에 대한 내용을 물으니. 전설은 전설이 아니겠느냐고 하시며 실제 절 오른쪽으로 암봉이 셋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 봉우리가 새신바위(鳥神巖)라고 했다.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 올라가서 지금의 절터를 잡았고. 대웅전에 벽화를 그리던 새가 인기척에 놀라 자취를 감춘 곳이 새신 바위라고 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스님의 전송을 받으며 함께 온 할머니를 율현리까지 태워드리고 나니. 짧은 겨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목면시배유지] 국도 3번이 비껴가는 원지에서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단성교를 건너 20번 국도를 조금만 따라가면 단성면 사무소가 있다. (사진:목면시배유지 내 전시실 배틀)

     이곳에서 1km쯤 가면 오른쪽에 사적 제108호 목면시배유지가 있다. 고려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목화가 없어서. 양반들은 명주실로 짠 옷을 입었고 백성들은 삼베나 짐승의 털가죽을 이용하였다.

     백성들이 삼베로 겨울을 지내기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공민왕 12년(1363)에 붓두껍 속에 숨겨온 목화씨 10개를 장인 정천익과 각각 5개씩 나누어 심었다.

     이듬해 가을 장인 정천익이 한 그루의 목화를 키우는데 성공하여. 36년 뒤인 조선 태종 때에는 백성들이 두루 무명옷을 입게 되었다.

    제1. 2전시실에는 실 잣는 물레와 무명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잘 진열되어 있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야외에는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사라진 귀한 목화를 만날 수 있다. 문익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도천서원이 그의 고향인 신안면 신안리에 있고. 옆산 중턱의 상석과 비. 문인석. 망주석. 석등을 잘 갖추고 있는 방형분 묘에 서면 산청의 젖줄인 경호강이 눈앞에서 넘실거린다. (옛그늘 문화유산답사회장·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맛집]
      ▲물장구 식당(생비량면 도전리 ☎973-8333) ‘암소가 아니면 1천만원을 드립니다’ 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한우 암소 생고기 전문점으로 등심 갈비살(200g) 1만2천원.
      ▲구만 횟집(단성면 창촌리 ☎972-5021) 한방 메기탕 전문 음식점으로 30여 년간 2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2인분 2만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