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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⑩ 의병의 고장 의령

  • 기사입력 : 2005-1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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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의장군 호령소리 귓가에…


      의령으로 순례 길을 떠나는 것은 마음의 빚을 갚으러 가는 길이다. 2004년 5월 경남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친구에게 의령을 쓰겠노라고 해놓고. 그만 중도에 약속을 다 지키지 못했다. (사진 위 구 정암교와 정암루)

      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함안군 군북과 의령은 겨울철인데도 수박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찜질방 같은 비닐하우스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자식 키우듯이 애지중지 키워낸 농작물이 본전도 안 된다면 속 터질 일이다.

     농민들의 아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강 변을 따라 펼쳐지는 아늑한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새 다리가 준공되고 의젓한 관문까지 생긴 후 남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았던 구 정암교는 보수공사를 한다고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의령읍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암루는 구 정암교가 끝나는 의령 쪽 언덕 위에 있다. 정암루는 조선 중기에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인데, 취원루는 소실되었고, 1935년 이 고장 사람들이 아담한 정자를 짓고 정암루라 하였다. 정암루에 올라보면 유유히 흐르는 남강과 들판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정암루 바로 아래에 의령 순례길에 놓치지 않아야 할 정암 나루와 물위로 솟은 정암(鼎巖)이 있다. 정암이란 이름은 바위의 뿌리가 솥다리처럼 세 개로 떠받치고 있는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아흐레 만인 1592년 4월 22일 전국에서 최초로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켜 남강을 건너 의령으로 진격하려던 왜적 2만명을 고작 의병 1천명을 이끌고 싸워 크게 승리한 역사의 현장이다.

      읍내로 들어서면 의령천을 끼고 남산에 안겨 있는 충익사가 있다. 남천을 가르는 의병교를 건너면 양쪽 기둥을 세워 둥근 고리로 층층이 쌓은 의병탑을 맨 먼저 만난다. 사당 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곽재우와 17의병장에게 사후에 내려진 관직명과 관향(貫鄕:시조의 고향. 본관)등을 봉안하고 있는 충의각이다. 이 건물은 공포의 장식과 민화병풍을 연상케 하는 벽체가 몹시도 화려하여 상여 같은 느낌을 준다. 기념관에는 곽재우의 출생 또는 임진왜란 전투에 관련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유물 6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읍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몇 걸음 옮기니 도로가 비켜가는 느티나무 옆에 천연기념물 제196호 의령 신라통중의 우흔(빗자국 화석)이 있다. 1억년 전의 지층에 만들어진 빗방울 자국으로 당시의 환경을 이해하는 자연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한다.

      군청 입구에서 200m 쯤 서쪽으로 가면 의령향교가 있다. 향교의 정문 수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의 장대한 모습이다. 수인루 아래층은 출입문이지만 2층은 유생들의 여가 공간 및 여름철 학습공간이자,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다. 그래서 신성함이 유지되어야 할 대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원래 의령읍 동동리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40년(1607)에 당시의 의령현감 이함(李涵)이 지금의 장소로 옮겨 지었다. 건물 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 배치의 일반적인 형태인 직선 축 상에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따르고 있다.

      짧은 겨울 해는 종종 걸음을 쳐도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벽화산( 526m) 아래 수암 마을골짜기에 옛절의 정취가 남아있는 보천사 터는 의령 답사에서 충익사 다음으로 보물급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아담하고 균형 잡힌 자세로 우뚝 선 보천사 터 삼층석탑은 높이 4.57m로,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부를 얹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골짜기 아래쪽으로 150m쯤 내려가면 양지바른 곳에 보천사터 부도 1기가 있다. 높이 3.35m에 팔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호리호리한 느낌에 화려한 귀꽃이 첫눈에 돋보인다. 폐사지에 절집들이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절터 주변에 절집이 새로이 들어서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천년 세월을 넘나드는 보천사 터 삼층석탑처럼 새 절집의 수문장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칠곡면

      국도20번을 따라 진주 방향으로 가례면을 지나면 칠곡면이다. 신포리 일대에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선사시대의 거석문화(巨石文化)를 대표하는 7기의 선돌이 군데군데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사진 위에서부터 천연기념물 제196호 의령 신라통중의 우흔, 의령향교, 보천사터 삼층석탑, 수도사 석탑과 극락전)

     선사시대에는 지석묘 주변에 선돌을 세워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였고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풍요로운 수확이나 자손의 번창을 비는 의식을 위해 세우기도 하였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농부 김부연(44)씨는 썰렁한 집 마당에서 칠성바위 내력은 제쳐놓고 정부의 농촌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계자금, 학자금, 농자금으로 빌려 쓴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마저 경매 처분위기에 있다고 하였다.

    집안에는 농촌정책을 규탄하는 구호가 적힌 노란 깃발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농촌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의령의 진산 자굴산(897.1m)아래 내조리에는 의령군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양천지구 전원마을 25가구 조성 지역이 있다.

     의령보건소에 근무하는 최미리(46)씨의 안내로 이곳을 찾아 온 적이 있었다. 필자가 인구가 적은 의령이 사는 방법은 선진국처럼 5일은 도회지에서 근무하고 2일은 산 좋고 물 좋은 의령에서 살 수 있도록 택지를 개발하여 무상 또는 저렴하게 임대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곳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필자 보고 주민등록을 옮기라고 할 만큼 의령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수도사

      바쁜 마음에 자굴티재를 넘어 찰비계곡을 따라 궁류면 의령예술촌으로 가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길이 좋지 않다고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천년고찰이 있는 용덕면 수도사로 향했다.

     20번 국도를 따라 의령읍내를 벗어나자마자 5.2k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들판 사이로 난 길을 십리쯤 가면 저수지 공사가 한창이다.

     저수지가 끝나는 곳에서 수도사까지 이어지는 잡목이 우거진 산길은 절집을 찾아가는 순례 길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호젓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름다운 길이다.

     땅거미가 이미 내린 절집 앞에 도착하니 만면에 웃음을 띤 인자한 모습의 자성(45)스님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사는 662년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원효대사가 절 뒤 병풍바위에서 백여 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되었다.

      수도사에는 석조아미타여래 삼존상과 칠성탱이 절집에 있고 감로탱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삼존불의 아미타여래는 무거워서 도둑이 훔쳐가지 못했고, 대세지보살은 눈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겨울 날씨 만큼이나 소박해 보이는 절집을 뒤로하고 스님과 작별인사를 한 후 8기의 부도가 있는 아래쪽 산비탈로 내려서는데 흰색의 진돗개가 앞장서서 안내하더니, 떠나는 자동차 뒤에서 배웅을 하듯이 후사경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옛그늘 문화유산 답사회장·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여행 TIP

      [특산물]  △의령조청한과: 칠곡면 내조리 446-2. 전화 055-573-6565.  13년동안 줄곧 농민과 직접 계약 재배한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여 의령군내 할머니들의 오랜 손맛으로 만들고 있다. 대표이사 최성대(51)씨와 김현의(50)씨 부부는 의령이 고향이다.


      [맛집] △풀내음: 가례면 봉두리 235. 전화 055-572-3267.소바란 일본 이름으로 불리는 메밀국수 5,000 원. 해물빈대떡 10,000원. 김치두부 10,000원.
      △찰비골 쉼터: 궁류면 운계리 53. 전화 055-572-8285. 주인이 직접 키운 토종닭으로 단백한 맛을 내는 닭국 1마리는 3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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