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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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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한옥마을

  • 기사입력 : 2005-09-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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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담길 돌아들면 여기는 '조선시대'

      함양은 영남학파의 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고장으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선비들의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체험장이나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고유의 전통한옥이 잘 보존돼 있는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은 함양군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숭산 자락에 있다. 남계천이 흐르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국도 24호선이 관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함양지역의 교통·물류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다.

      이 마을은 99가구에 주민 223명(남 101. 여 122명)이 생활하며 쌀. 사과. 곶감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정여창 고택을 중심으로 60여채의 전통한옥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마을로 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개평마을은 옛날 덕곡면에 속했던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곡면에 편입돼 많은 인물을 배출했고 오라대 마을과 개화대 마을을 합쳐서 개오대마을이라고 하는데 이를 개평리로 부른다.

      14세기에 하동 鄭씨와 경주 金씨가 들어와 살다 15세기에 풍천 盧씨가 들어와 살았고. 현재는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가 대부분이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우물과 그 우물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종바위가 있는데 이 물은 개울(옥계천) 좌우로 자연 암반 위에 있던 샘물 다섯 개 중의 하나다.

      마을이 배의 형국이라 우물을 파면 안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사람들은 이 다섯개의 우물 외는 일절 다른 우물을 파지 않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를 무시하고 초등학교를 지으면서 우물을 판 뒤부터 마을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평마을이 한옥마을로 알려지면서 정여창 고택이 TV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이기도 한 안채는 300여년 전에 중건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문화유적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전통한옥 체험장으로 청소년단체· 가족 단위의 방문도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한옥마을 돌담은 옛 조상들의 손길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돌담 옆에는 10년이 넘도록 장작이 그대로 쌓여 있어 옛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다.

      매년 한옥문화원(원장 신영훈)과 함양군이 전통한옥마을 체험을 위해 전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접수해 초청. 우리 한옥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조상들이 살아오면서 만들었던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인절미. 한과 약과. 엿. 수정과 등 전통음식을 먹어보며. 새끼를 꼬고 초가지붕 이엉을 엮는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도 가진다.
    개평마을은 함양읍에서 8㎞ 거리의 지곡면 소재지에 있으며 마을에는 조선조 5현 중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의 고택 등 100년이 넘은 크고 작은 고택 60여 채가 있다.

      조선시대 진상품인 개평의 준시를 비롯.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종가에서 530여년 동안 비법을 가지고 제조해 오던 ‘솔송주’와 ‘복분자’가 생산되고 있다.

      한옥보존회 정운상 회장은 “개평마을은 전통 한옥촌이 잘 보존돼 있는 마을로 외국인 단체 탐방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충효예절학습이나 전통문화 이벤트를 할 수 있는 한옥마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양=서희원기자 sehw@knnews.co.kr

      ■ 정여창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인 일두 정여창 고택은 조선조 5현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1세기 후에 후손들에 의해 중건. 3천여평의 대지에 12동(당초 17동)의 건물이 배치된 남도 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고택으로 문간채. 사랑채. 행랑채. 아래채. 안채. 사당. 고방채. 별당채 등을 갖춘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전통공간 구성기법으로 꾸며져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과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에 내루가 앞 쪽으로 달린 전출 구조로 간결하면서도 단아하고 소박한 난간과 추녀를 받치는 활주를 세우고 있어 가늘고 긴 석주를 초석으로 삼았다.

      솟을대문에는 정려를 게시한 문패가 다섯 개가 걸려있고. 문헌세가. 충효절의. 백세청풍 등을 써붙인 사랑채는 전퇴가 있으며 높직한 댓돌 위에 세워져 있다.
    사랑채는 옆의 일각문을 거처 안채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일각문을 들어서면 또 한번 중문을 통과해야 되고 안채 좌측은 아래채. 뒤편은 가묘와 별당. 그리고 안사랑채가 따로 있다.

      남향한 一字형의 큼직한 안채는 경북지방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달리 개방적으로 분할돼 집이 밝고 화사하다.

      정여창 고택의 옛 손길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세간들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양반가의 기품이 가득하며. 정여창 고택의 유적 명칭은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을 따서 ‘정병호 가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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