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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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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

  • 기사입력 : 2005-08-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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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픔의 역사' 산자락마다 서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이다.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고 빨치산 활동의 주무대였던 이곳 시천면 중산리 중산관광단지 내에 빨치산 토벌 전시관이 있다.

      지리산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며. 6·25전쟁을 전후해 암약했던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간의 전선을 따라 피로 얼룩진 민족상잔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6·25를 전후해 지리산을 중심으로 암약했던 ‘빨치산’이라는 특수한 테마를 이용해 생생한 자료물 전시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지리산과 빨치산 역사를 돌아볼 수는 교육장이 조성된 것이다.

      군은 지난 2001년 사업비 16억원을 들여 전시관 145평. 야외전시장 1천평. 중산리. 대원사. 내원리. 내대리 방면의 등산로를 따라 빨치산 체험코스 4개루트 8개소로 이뤄져 있으며 전후 세대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코스는 제1체험코스인 13㎞의 중산전시관~경남자연학습원 3거리~순두류 아지트~법계사 아지트~망바위~칼바위 아지트~두류동 주차장과 제2체험코스인 대원사방면 12㎞ 등 모두 31㎞에 4개 체험코스가 조성돼 있다.

      전시관은 역사실. 생활실. 영상실 등으로 꾸며졌고. 1층 역사실은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이 땅에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빨치산의 태동.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치산 사건 등을 살펴봄으로써 빨치산의 실체와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각 실마다 해방과 빨치산. 전쟁과 빨치산. 빨치산과 토벌부대의 지리산 생활. 빨치산 다큐멘터리실로 구분된다.

      야외전시장과 전시관에는 지난 50년 당시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전차와 장갑차. 헬기·총기류·군복·무전기 등과 아지트 모형이 전시돼 있으며 인민군과 빨치산. 제1사단과 11사단의 빨치산 토벌작전. 휴전후의 빨치산과소탕작전. 지리산 최후의 총성 등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2층 전시관은 빨치산의 실체와 역사의 기초가 되는 빨치산의 생활을 알아보고 지리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와 자연경관. 산청의 문화관광자원을 알아보는 생활실. 산청과 지리산. 소영상실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특히 영상실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이 땅에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빨치산의 태동.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치산의 실체와 당시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빨치산을 이야기하면서 정순덕을 빼 놓을 수 없다.

      1963년 11월 12일 삼장명 내원리에서 생포되어 24년간 수감생활을 마치고 2004년 그 한 많은 삶을 마친 최후의 빨치산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정순덕은 1933년 6월 산청군에서 태어나 51년 1월 결혼한 뒤 이듬해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던 남편(성석조)을 찾아 나섰다가 자신도 빨치산이 됐다.

      체포 당시 엉덩이에 총을 맞아 한쪽 다리를 잘라야 했던 정순덕은 이후 대구. 공주. 대전교도소에서 모두 23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지리산에 포성이 처음 울린 후 15년 동안 빨치산 투쟁의 본거지인 비극의 땅으로 변모한 지리산에는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생포되면서 지리산의 포성도 함께 멎었다.

      전시관은 개관이래 1일 400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데 6·25전쟁 중 빨치산 토벌에 참가했던 군인들이나 당시를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감회에 젖곤 한다.

      또한 더 이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빨치산’이라는 특수한 테마로 생생한 아픔의 현장을 재현함으로써 방학을 맞아 지리산 중산리 계곡에 휴가를 온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자녀들과 함께 찾아보는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변 볼거리·먹거리

      ▲덕천서원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다.

      1576년(선조 9년)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士林)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한 서원으로 조식유적지(사적 305호) 내에 있다. 지난 1609년(광해군 1년)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세심정(洗心亭)·조식묘 등이 있다.

      조식은 1501년(연산군 7년)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군)에서 출생하였는데, 이황과 함께 당시 영남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로 실천적인 성리학을 중시하였다.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현재의 산청군 시천면인 덕산(德山)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다가 1572년(선조 5년)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덕산 입구의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면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 덕천서원에 이른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정면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이 있고 그 앞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덕천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첫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양력 8월 18일에는 남명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중산리 계곡

      가장 지리산다운 계곡이면서 투박한 계곡을 손꼽으라면 중산리계곡이다.

      이 계곡은 칼바윗골. 법정골. 법천골 등으로 불려지는데. 이는 칼바위를 경계로 위쪽을 법천골. 아래쪽을 중산리 계곡으로 구분하기 위해서고. 법천골은 법계사 방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법천폭포를 만들고 있다는 데에 근거하고 있다. 천왕봉을 업고 생성된 법천골은 많은 명소와 애환 그리고 역사가 깃든 계곡이다. 그러면서도 다듬어지지 않고 투박한 자연 그대로 지금껏 남아 있기에 가장 지리산다운 계곡으로 평가받고 있는것이다. 법천골의 역사는 옛 선조들의 물물교환을 위한 길목에서 엿볼수 있는데 장터목이란 지명이 바로 그것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비롯된 계곡으로 중산리(中山里)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산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부터 지리산 등정의 출발지로 이용됐다.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계곡답게. 또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덕천강의 발원지답게 계곡미도 빼어나다.

      ▲두류동 맛집들 :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산사람들을 위한 맛집 3곳이 한 건물에 인접해 있다. 메뉴는 산채비빔밥과 정식이 주류를 이루며. 이외에도 송어회. 산천어 등 신선한 민물고기회도 맛볼 수 있다.  천왕봉의 집(☏ 972-1155). 산꾼의 집(☏ 972-1212). 용궁식당(☏ 973-8646)

      ▲계곡식당 : 지리산 계곡수가 철철 넘치는 곳에 위치해 있고. 염소불고기가 유명하며 토종백숙닭. 오리. 산청정식 등 메뉴도 다채롭다. 편안한 실내공간의 숙박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고 맑은 물가에 만들어진 평상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산중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다. (☏ 972-1441)

      - 찾아가는 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단성IC에서 빠져 20번 국도를 따라 시천면 방면으로 가다보면 중산관광지 내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에 도착한다.
    국도를 이용할 경우, 3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신안면 원지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시천면 방면으로 가다보면 중산관광지 내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에 도착한다. 산청=김윤식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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