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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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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33) 양사가혜(良師嘉惠)

- 훌륭한 스승의 아름다운 은혜

  • 기사입력 : 2024-06-11 0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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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세계적인 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浦項工科大學校)를 건설하고 초대 총장을 지낸 무은재(無垠齋) 김호길(金浩吉 : 1933~1994) 박사가 별세한 지 올해 30주년이 된다. 이 대학 안에 무은재기념관이 있는데,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이 놓여 있다. 그를 성장시킨 두 가지 큰 축(軸)이 있는데, 하나는 과학법칙이고, 하나는 퇴계학(退溪學)이다. 그는 물리학자이면서 한문학에도 능했고, 현대를 알면서도 옛날 일도 잘 알았다. 전통을 계승하고 윤리도덕을 회복하기 위해 만든 유림단체인 박약회(博約會)의 초대회장을 그가 맡은 이유이다. 그는 말하기를, “학문은 많지만 사람 만드는 학문은 유학밖에 없습니다”라고 강조하면서 평생 퇴계학을 공부했다.

    그가 이렇게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어 노벨상 후보에 들 정도에 이르면서, 평생 퇴계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한 데는 어릴 때 만난 두 분의 훌륭한 스승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동군 임하면 지례마을에서 태어나, 열 살 때 고모부가 사는 도산면 하계마을로 이사왔다. 고모부는 퇴계선생의 13대손인 우석(友石) 이탁(李鐸 : 1890~1972)이라는 큰 학자였다.

    어른들 말을 안 듣던 개구쟁이가 고모부의 말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나무라지도 않는데도. 언행이 완전히 일치되는 모범적인 처신을 하기 때문이었다. 한문도 배우고,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늘 말씀을 듣고 자랐다. 고모부는 그에게 “공부 많이 해서 선생 할배의 학통(學統)을 네가 이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과학을 발전시켜 나라를 잘 살게 만든 뒤에”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계마을의 6년제 도산국민학교에 편입했는데, 4·5·6학년 담임을 맡은 분은 원촌 출신의 이원강(李源綱 : 1925~2014) 선생이었다. 퇴계선생의 14대손이었다. 이 분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는데, 한문에 능하면서 수학에 특출한 재주가 있었다. 독학으로 국어와 수학 중등교사자격증을 획득했다. 나중에 연암공업대학(蓮庵工業大學) 교수를 지냈다. 김 박사가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밤에 불러 개인 지도를 했더니, 6학년 때는 일본의 고등학교 수학교과서까지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1951년 부산에 피난 가자,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 하고 급장을 하던 김용직(金容稷)이 부두에서 짐을 메고 있었다. 그럴 줄 몰랐다. “너 대학을 안 가고 여기서?”라고 물었다. “수학, 물리가 안 되어서?” “밤에 나한테 와”라고 하였다. 그 뒤 6개월 개인지도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만들었다. 김용직은 그 뒤 서울대 국문과 교수, 평론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김용직 교수는 “나에게는 아버지가 둘 있다”라고 할 정도로 김 박사를 고마워했다. 1961년 영국 버밍햄대학에 가서는 개교 이후 최초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로렌스연구소로 발탁되어 갔다. 물리학을 이렇게 깊이 연구할 수 있는 데는 그의 특출한 수학실력이 바탕이 되었다.

    사람은 좋은 스승을 만나 훌륭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어릴 때 만나면, 더욱 중요하다. 정말 아름다운 은혜를 입어 평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 良 : 어질 량. * 師 : 스승 사.

    * 嘉 : 아름다울 가. * 惠 : 은혜 혜.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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