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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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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족의 이름- 서현주(전직 교사·작가)

  • 기사입력 : 2024-05-16 19: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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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 모르는 게 말이 돼?” 중3 때 담임 선생님은 고등학교 진학지도를 하시면서 나를 다그쳤다. 진짜 모르니까 모른다고 한 건데. 교무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두려워 입을 꾹 닫았다. 선생님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면서 “집에 가서 엄마랑 상의해 와.”라고 하셨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엄마, 아빠의 이혼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원래부터 뚜렷한 직업도 없었거니와 이미 별거한 지 오래되어 생사도 모르는 아빠의 직업을 말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교사가 되어 보니 담임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학생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끽해야 학기 초에 작성하는 학생 기초 조사서 정도이니 개개인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부부의 별거나 이혼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세상도 아니었으니, 부모 의견이 필요한 상담 시간에 입을 다문 학생이 답답했겠지.

    교사로 지내면서 동료 선생님들이 가볍게 내뱉는 말도 가끔 상처였다. ‘쟤는 편모 가정이라 저래, 조부모가 키워서 문제 행동을 하나 봐, 이혼 가정 애들을 애정 결핍이야.’ 어떤 문제의 원인을 가족의 형태에서 찾는 일이 잦았다. 실제로 그러하든 아니든 가볍게 판단하고 보는 습관을 가진 어른들이 학교에도 있었다.

    중3 때 상담이 중요했던 이유는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엄마가 나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였다. 장학금을 받고 실업계에 가느냐, 상황이 안 되지만 인문계에 진학하느냐. 이 고민을 해결해 준 분이 나의 두 번째 아빠다. 두 딸을 먹여살리려고 일터에 나간 엄마는 우리를 함께 키우고자 하는 사람을 만났다. 덕분에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교사도 될 수 있었다. 내가 방황할 때면 ‘애들은 원래 그래’라고 무한한 이해와 인내를 보여준 분이다. 이제는 나를 길러준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생물학적 아버지와 지낸 날보다 길어졌다.

    “왜 엄마랑 외삼촌은 성이 달라?” 한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가 물었다. “할머니는 엄마를 낳아준 아빠와 헤어졌어. 따로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여겼거든. 너희 외삼촌은 할머니와 지금의 할아버지가 낳은 아이야. 우리나라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있어서 엄마와 외삼촌은 성씨가 다른 거고.” “아하, 〈따로 따로 행복하게〉에 나오는 엄마, 아빠처럼 끝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거구나!” 우리 가족의 특별한 구성을 이해한 아이는 초등 1학년 수업에 나오는 가족 나무에 엄마와 성씨가 다른 할아버지의 이름을 적었다. 어린이들과 잘 노는 나의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손주들과 종일 시간을 보낸다. 무슨 얘기든 들어주고 재미있게 놀아주는 할아버지가 좋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족이란 무엇일까 떠올린다.

    최근 코스모폴리탄에는 정자 기증을 통해 출산을 한 레즈비언 부부 인터뷰가 실렸다. ‘법적 부부도 아닌데 엄마라고 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에 두 명의 엄마 중 한 명인 규진씨는 답했다. “그렇게 치면 입양한 아이나 재혼 가정의 아이는 자녀가 아닌 거냐”라고. 가정의 달이다. 편견을 깨는 가족들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어떤 형태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서현주(전직 교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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