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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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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14) 최광호 사진가

렌즈에 담은 수많은 ‘지금’… 시간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랑방’

  • 기사입력 : 2024-05-15 21: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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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에 살다 2020년 밀양에 즉흥적으로 정착
    창원 강의실 찾다 작년 작업실 겸 카페 열어
    최근 도립미술관서 ‘밀양의 바다’ 전시도

    일본·미국서 좋은 스승 만나 영향 받아
    ‘사진은 사는 것’ 화두로 ‘사진’ 확신 생겨
    매주 사진 강의하며 사람들과 깊이 교류

    다양한 사진 표현 위해 설치·회화 등 연구
    일주일에 한 번 경주 걸으며 사진 작업 중
    질리지 않는 사진의 삶, 행복하게 만들고파


    사진은 무엇이냐. 물도, 시간도 온통 흐르기만 하는 세상에 사진만이 그것을 잘라낸다. 잘라낸 것은 ‘지금’이다. 잘라낸 ‘지금’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다시 흐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진이다. 카메라를 손에 잡은 지 50년을 넘겨, 이제는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게 된 최광호 사진가(68)가 그렇게 답했다. 그의 삶은 사진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연고도 없던 경남에 물 흐르듯 들어온 것은 습관적으로 누르는 셔터처럼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최광호 사진가는 누구보다 ‘지금’에 충실하다.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은 파인더 바깥의 이야기다. 창원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광호 1019 갤러리’에는 그가 잘라 놓았던 무수한 ‘지금’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발견한 다양한 가능성, 사랑했고 또 새롭게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공존하는 그의 작업실은 ‘최광호의 지금’이 흐르는 사진과 같다.

    최광호 사진가가 창원시 의창구 북면 ‘광호1019 갤러리카페’ 2층 작업실에서 카메라 없이 인화지 위의 물체에 빛을 쬐어 이미지를 만드는 포토그램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최광호 사진가가 창원시 의창구 북면 ‘광호1019 갤러리카페’ 2층 작업실에서 카메라 없이 인화지 위의 물체에 빛을 쬐어 이미지를 만드는 포토그램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새로운 현재와의 조우, 경남에 오다

    -현재 집은 밀양이고 작업실은 창원에 있다. 언제, 어떻게 경남에 오게 됐나.

    △평창에 살다가 이사를 생각하게 됐다. 휴전선 근처로 갈까 고민했었는데 딸이 ‘추운 건 싫어, 따뜻한 곳으로 가자’고 해서 무작정 남쪽을 살펴봤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밀양이고 2020년에 이사를 했다. 예전에 살았던 곳보다 더 시골인데, 어떤 이유나 계획 없이 그냥 즉흥적이었다.

    -작업실 겸 카페인 이곳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밀양에서 작업을 했나?

    △밀양 집에 작업실도 함께 있다. 지금도 두 곳을 왕래하며 작업한다. 창원의 작업실은 부산에서 전시를 하다가 창원의 작가들을 만나고 강의 요청을 받아서 강의할 곳을 찾다가 보게 됐다. 장소가 마음에 들었고 또 다시 즉흥적으로 작업실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려고 이곳을 정했다. 현재 카페는 딸이 운영하고 나는 작업을 한다.

    -이전에 경남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산 가족이라 한국에는 친척이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나고 자란 강릉이 내 고향이고 평창에 살았고… 그 외에는 연고가 거의 없는 셈이다. 다만, 과거 ‘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사에 있을 때 창원에 제일 긴 직선대로인 창원대로가 생겼다고 해서 사진을 찍으러 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도로라고 하기도 애매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때 필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경남과 창원에 대한 내 기억은 거기서 시작했다.

    -지금 보이는 ‘밀양의 바다’는 이번 경남도립미술관 ‘경남의 산·섬·들’ 1부에 전시됐던 작품인데. 밀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밀양에 바다가 없는데 ‘밀양의 바다’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밀양 집 옆에 대나무밭이 있었다. 참 좋아했는데 어느 날 그곳을 철거하고 공사를 하고 있더라. 공사장에 커다란 야적용 파란 천막(자재덮개)이 걸려 있었다. 비가 온 뒤에 보니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웅덩이가 햇빛에 비쳐 윤슬이 반짝이고, 천막을 툭 건드리니 파장이 일었다. ‘아, 이게 바다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이 고향인 나는 언제나 바다를 갈증했다. 밀양에 바다는 없지만 결국 나만의 바다를 찾게 된 셈이다.

    최광호 作 밀양바다#005, 2023.
    최광호 作 밀양바다#005, 2023.
    창원시 의창구 북면 '광호1019 갤러리카페' 2층 작업실에 사용한 커피여과지에 얼굴을 그린 최광호 사진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 의창구 북면 '광호1019 갤러리카페' 2층 작업실에 사용한 커피여과지에 얼굴을 그린 최광호 사진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김승권 기자/

    ◇사랑했고 또 사랑하게 된 사람들

    -작업실 테이블에 사진집과 공부하기 좋은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평소에도 참고하는 책인지.

    △사실 매주 사진을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사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때 사용하는 책들이다. 창원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강의를 들으러 많이 오신다. 경남 사람들이 참 좋다. 밀양에 왔을 때도 사진을 한다는 공통점으로 이사도 도와주고, 환영하는 현수막도 걸어줬다. 창원에 있는 공간을 만들 때도 많은 도움을 줬다.

    -자신을 포함해 가족, 주변인들을 작품 속에 많이 담아왔다. 어딜 가든 사람들과 깊이 교류하는 것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일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것도 사람이 계기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근처에 사진 현상소가 있었다. 거기는 담배도 팔았다. 담배를 사다가 거기 사장님한테 혼나면서 연을 맺게 됐는데, 필름을 현상기에 집어넣는 인화 과정들을 그때 접하게 됐다. 그걸 계기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도 그곳의 사람들에게 사진의 가치를 배워온 것으로 안다.

    △큰절을 올린 은사들을 만났다. 일본에서는 오사카 예술대에 다녔다. 수업 첫날, 저녁 자리에서 스승에게 사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사진은 사는 거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과 내가 사는 게 어떻게 다르냐, 사는 걸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졸업할 때 즈음에 가르쳐 준다 하더라. 그때부터 내게 ‘사진으로 사는 게 뭘까’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이후 졸업할 때 선생님을 만났는데 ‘네가 나보다 더 잘 산다’고 했다. 내 삶의 중심에 더 사진이 있더라고. 그때 이후로 내가 해온 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뉴욕대학교에서 만난 스승은 사진이 예술이 되는 방법을 확장시켜줬다. 내가 제1회 동강사진상을 수상했을 때 작품을 보러 한국까지 와줬었다.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최광호 사진가가 한눈을 감고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얼굴에 대고 있다.
    최광호 사진가가 한눈을 감고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얼굴에 대고 있다.

    ◇사진으로 행복해지는 것

    -직접 그린 그림도 많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회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설치나 회화에 대해서는 사진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밤에 쓰는 연애편지나 잠이 안 올 때 끄적거리는 글귀 같은 거다. 회화 작품만 모아 따로 전시를 해본 적은 없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할 수도 있겠다.

    -작품 구상을 할 때 주변을 담는 편이라고 들었다. 밀양에 와서는 주변의 자연물로 포토그램(인화지에 사물을 놓고 빛을 이용해 제작하는 방식) 작업 등을 했다. 이곳에서는 어떤 계획이 있나.

    △이곳 작업실 주변은 재밌다. 근처에 공장, 아파트도 있고 주남저수지나 마금산온천 등 풍경도 좋다. 사물도 풍경도 결국 이곳의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해 관심이 생겼다. 결국 이곳 사람의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풀어보는 것이 중점이다. 그 작업을 1년 정도 하게 될 것 같다. 아직 창원을 잘 모르는데, 혼자 하기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했으면 한다.

    -카메라를 잡은 지 50년이 넘었고 그간 160여회가 넘는 전시를 진행했다. 한국의 손꼽히는 현대 사진가가 됐는데, 앞으로의 목표는 없을까.

    △최근에 ‘내가 사진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경주 찍기’가 생각나서 일주일에 한번 경주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도 사진은 질리지 않는 삶이지만 그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보고자 한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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