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1일 (일)
전체메뉴

“3·15의거 당시 ‘공권력 대응 진실’ 밝혀야”

임종금 3·15의거과 팀장, 계간지 게재

  • 기사입력 : 2024-04-03 08:06:09
  •   
  • 3·15의거에 대한 진상규명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거 당시 공권력 대응의 진실은 밝혀내야 할 과제라는 담당자 의견이 나왔다.

     임종금 3·15의거과 팀장은 진실화해위원회 계간 소식지 ‘진실화해’ 봄호에 게재한 ‘3·15의거 밝혀진 사실 밝혀져야 할 진실’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임 팀장은 글에서 “3·15의거는 ‘대한민국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붙지만, 뒤집어 말하면 ‘참혹한 인권유린 현장’이었다”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마산 시민들은 인권유린을 저지른 이들이 단죄받을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3·15의거 발포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손석래 마산경찰서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15의거 발포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손석래 마산경찰서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주열 시신을 유기한 박 경위는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7년으로 감형됐고, 총을 쏜 혐의로 기소된 김 경사와 이 경사는 징역 15년, 주 순경과 이 순경은 징역 4년이 확정됐지만 1963년 모두 가석방됐다. 시신 유기에 가담한 장 경사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1963년 사면됐다. 당시 수사기관을 지휘하던 손석래 마산경찰서장, 서득룡 부산지방검찰청 마산지청장 역시 수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자수했고 197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대해 임 팀장은 “사건 발생 근 20년 만에 3·15의거는 무수한 피해자만 남은 사건이 됐다”며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경찰 말단인 순경, 경사, 경위 등이 인권유린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으며 책임자가 누구인지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수많은 시민을 고통에 빠뜨린 발포 책임 등 발포 지휘체계, 고문의 책임 소재, 구체적인 피해자 규모 등 3·15의거 당시 공권력 대응은 진실화해위가 풀어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글에서 진상규명을 통해 지역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물결도 강조했다. 그는 “진상규명 결과 다수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 확인되면서 창신고와 마산제일여고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내년까지 나머지 5개 학교에도 기념물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새롭게 밝혀낸 할아버지·할머니 시위와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를 비롯해 추가 희생자 2명에 대한 기록을 3·15의거기념관과 3·15의거발원지기념관 등에 반영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용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