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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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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칼럼] 존사애제(尊師愛弟), 그 희미해져가는 가치를 생각하며- 정수만(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4-04-02 19: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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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유(代喩)’를 아는가. 이는 하나의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는 말이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수사법을 말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면, 그것을 매우 비극적인 대유라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지난해 일어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그 이후의 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7월 동료 교사의 죽음에 2만 명의 교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뜨거운 여름날이 무색하게도 주마다 11차례나 이어졌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보고도 못 본 척, 쉬쉬하던 교권 침해의 심각성과 함께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여실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교육 당국은 분주했다. 교권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교권침해 시 학생에 대한 조치 등을 주요 쟁점으로 교권 보호 4법을 개정했고, 교육부는 ‘생활지도고시’ 표준안을 내놓았다. 과연 그것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을까. 법률이 개정되었다고는 하나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받을 수 있을지, 추락한 교권이 회복된 학교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각 지역 교육청과 수많은 학교 구성원들의 중대 과제로 남아 있다.

    학교의 기능은 교육에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보육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각각의 엇박자가 시작된다. 학부모들이 교사의 역할을 지식의 전달자에 국한할수록, 적극적인 지도나 훈육은 사라질 것이 뻔하다. 교육의 질이 동반 하락할 것도 자명하다. 권한 없는 자의 말을 누가 새겨들을 것인가?

    지금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떠올려보라. 악성 민원이 두려워 참교사가 되기엔 너무나 각박하고, 무정한 교사가 되기에도 녹록지 않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잘못을 지적하고 따끔하게 혼내는 무서운 어른도, 인생 고민이 생겼을 때 찾아 뵐 은사님도, 성과나 능률이 아닌 양보와 배려를 가르치는 교사도 없다.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가 학창시절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5일 ‘경상남도교육청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조례’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개정 방향은 법령에서 교권을 언급하고 있지만 교권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고려해 교권의 정의를 정의하고, 교사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소송 과정에 교육청의 법률지원이 가능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법령이나 조례가 전부일 리가 없다. 교권 확립은 학교 현장에서 각 주체가 자발적으로 구현해야 하기에 더욱 어렵고, 그렇기에 더욱 중대하다.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가르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학생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학부모는 교원의 교육 활동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건강한 학교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누군가의 ‘죽음’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비극적 수사가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정수만(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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