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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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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국가산업단지 50년을 보다] (상) 화려한 과거

광활한 농촌 벌판이 국가 기계산업 선도하는 중심 도시로

  • 기사입력 : 2024-03-04 07: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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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국가산업단지는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조성된 이래 50년간 한국 기계산업의 메카 역할을 했다. 입주기업들의 생산액은 1970년대와 비교해 현재 170배 이상 커졌다.

    다만 경제와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창원국가산단은 노후화와 연구개발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문제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 인구 집중, 중소기업 인력난 등의 영향으로 창원국가산단 노동자 규모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오는 4월 창원국가산단 50주년을 맞아 과거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현재의 문제와 미래 50주년 발전 전략으로 3편에 걸쳐 알아본다.


    1970년대 창원국가산단 조성 초기 모습./산단공 경남본부/
    1970년대 창원국가산단 조성 초기 모습./산단공 경남본부/

    1973년 정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통해 국가산단 추진
    산업 연계 입지 유리… 조성 과정 중 주민 희생·마찰도
    1974년 말 1호 기업 ‘부산포금’ 이어 대형업체 속속 가동

    ◇대한민국 중화학공업화의 시작= 창원국가산단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선언을 계기로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의 핵심 업종으로 기계(자동차 포함), 철강, 조선, 전자, 석유화학, 비철금속 등 6개 업종을 선정하고 이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적합한 입지를 물색했다. 이에 ‘기계-창원, 철강-포항, 조선-거제, 전자-구미, 석유화학-여수·광양, 비철금속-온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계기가 됐다.

    1973년 9월 창원국가산단 건설계획이 확정됐고 같은 해 11월 19일 본격적인 산단 조성이 이뤄진다. 창원은 부산, 울산, 마산, 진주, 대구, 포항 등 인근 공업 집적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산업 연계의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또 분지 지형에 지반이 견고한 광활한 평야가 있어 중량물 공장과 주거용지에도 적합했다.

    당시 이름은 창원종합기계공업기지였고 방위산업의 근간인 기계공업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평시에는 산업기계를 만들고 비상시에는 병기를 생산하는 기지로 계획됐다. 이는 공업의 지방 분산과 방위산업 집적을 통한 안보 강화 등의 다방면에 이점이 있었다. 당시 오원철 경제수석은 △방위산업 건설계획 △100억달러 수출계획 △중화학공업 건설계획 등 3개 과제를 통합해 창원종합기계공업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또 중복투자 방지, 건설비 감축, 가동 초기 작업량 확보 등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공단과 주거도시가 결합되는 복합 도시계획도 포함돼 건설계획이 마련됐다.

    다만 유신 독재 시절 추진되며 산단 조성 과정에서 당시 창원군 지역 주민들의 희생도 수반됐다. 기존의 전, 답, 대지, 임야 등을 헐어서 백지와 같은 새로운 터전 위에 공장용지와 주거용지를 신규로 조성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원주민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정성기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지난 2016년 발표한 ‘1970~198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사회없는 경제학’의 종말?’ 논문을 통해 “(창원국가산단 조성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마을들 자체가 해체되고 없어졌다”며 “약 7500가구, 약 4만2700명이 살던 마을의 집 등 물리적 시설들은 ‘지장물’로 간주됐으며, 공공기관과 함께 사유재산의 경우 염가로 강제매입 후 철거됐다”고 설명했다.

    2024년 현재 창원국가산단 모습. /산단공 경남본부/
    2024년 현재 창원국가산단 모습. /산단공 경남본부/

    ◇창원국가산단 현황= 1973년 9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에 따르면 산업용지는 13.16㎢(약 398만평) 규모로 계획됐다. 여기에 더해 주거지역 8.1㎢(245만평)의 배후도시 건설 계획도 함께 포함됐다. 산업단지 조성 공사 1년여만에 4.16㎢(약 125만8000평) 규모의 1차 조성단지가 준공됐다. 이후 산업단지 면적은 지속적으로 확장돼 2023년 기준 창원국가산단 면적은 35.87㎢로 부산 영도 전체 면적(14.12㎢) 두 배가 넘는다. 입주기업 수는 본격적인 가동이 시작된 1975년 44개 사에서 2023년 3분기 기준 2953개 사로 67배 증가했다.

    생산액 규모로 산단 내 산업 비중을 살펴보면 기계 업종이 37.3%로 가장 크고 이어 전기전자 23.7%, 운송장비 23.3%, 철강 13.8% 순으로 나타난다.


    석유파동 타격 극복, 외환위기 때도 연평균 20% 성장
    2022년 기준 생산액 51조4283억, 40여년간 3만배 증가
    도내 제조업 생산 36%·고용 38% 차지 ‘지역경제 핵심’

    ◇40여년간 생산액 3만배 증가= 1974년 전형적인 농촌지역에 불과했던 창원이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은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본부 자료에 따르면 창원국가산단은 2021년 기준 창원시 제조업 생산의 85.7%, 고용의 79.5%를 담당하고 있고 경남 제조업 생산의 36.8%, 고용의 38.6%를 차지하는 등 지역 경제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생산액은 51조4283억원으로 입주기업이 본격 가동된 1975년과 비교하면 3만4286배 상승했다.

    창원국가산단 1호 입주기업은 1974년 12월 30일 가동을 시작한 부산포금(현 피케이밸브)이다. 이어 1978년 금성사(LG전자), 기아기공(현대위아), 대우중공업(HD현대인프라코어), 삼성정밀공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 통일중공업(SNT다이내믹스), 한국종합특수강(세아창원특수강), 한국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 현대차량(현대로템), 효성중공업 등 대형 업체들의 가동이 시작되며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975년부터 초기 입주기업들이 가동을 시작했고 이때 연간 생산액은 15억원, 수출액 60만달러, 고용 1151명 수준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직 한국기계공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본부) 청사도 들어서기 전이었고 아직 옛 창원 지역은 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창원국가산단은 가동 초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다 1979~1981년 제2차 석유파동 때 첫 홍역을 앓는다. 제2차 석유파동 전 1976~1979년의 창원국가산단 연평균 생산액 증가율은 387.1%에 이르렀지만 1980년에는 0.9% 성장에 머무르며 주춤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3저(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호황으로 크게 성장했다. 1980년 4월에는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창원시로 승격됐고 당시 창원시 인구는 5만1952명이었다. 이때 창원국가산단 근로자 수는 2만8860명으로 창원시 인구의 55.5%에 이르렀다. 또 생산액을 보면 1980년 4506억원에서 1989년에는 5조237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1987년에는 노동자대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며 창원국가산단에서도 노사 분규가 처음 발생했다. 당시 창원국가산단의 37% 기업에서 분규가 발생해 자동차 부품 공급이 중단되자 울산 현대차 공장도 멈춰서는 일도 있었다.

    밸브부터 세탁기, 에어컨, 전차, 변속기, 항공엔진, 선박엔진, 원전 핵심부품까지 생산하면서 1994년에는 생산액이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에도 약 20%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였다. 이어 2001년에는 생산액이 20조원을 넘어섰다. 수출도 1987년 10억달러를 처음 돌파한 후 2008년 200억원을 넘어섰고 2012년에는 239억6700만달러를 달성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0년대는 이곳을 첨단기계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한 클러스터사업이 추진됐고 2010년대는 혁신산업단지와 스마트그린 선도산업단지로 지정돼 경쟁력 강화를 계속하고 있다.

    조규홍 기자 h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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