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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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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공간] 애매한 동네서점 ‘진주 보틀북스’

특이한 물건 별난 사람 가득… 책방은 ‘문화 실험 중’

  • 기사입력 : 2024-02-06 21:37:28
  •   
  • 사람을 사랑하는 책방지기
    직장생활 4년 만에 접고
    2018년 말 독립서점 오픈
    ‘나는 계속…’ 책 내기도

    이곳은 책방·카페·마을회관
    취향대로 고른 책 사이로
    때수건 등 특이한 소품 전시
    사진작가 등 단골들과
    재능 나누고 독서 모임도

    “어려운 시기 견뎌낸 건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
    저에게도 방문객에게도
    힘이 되는 장소가 됐으면”


    진주시 문산읍 월아산로 1047-14. 분명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왔는데 보여야 할 곳이 안 보인다. 동행자와 함께 당황스러움을 공유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서점이나 카페가 있을 곳이라기엔 애매한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잘 찾아온 것. 가게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더니 문산 LH행복주택으로 오면 된다는 답을 얻었다. 그리하여 찾은 독립서점, 아니 카페, 아니 마을회관? 아무튼 ‘진주 보틀북스’다.

    진주 문산 LH행복주택에 위치한 ‘보틀북스’.
    진주 문산 LH행복주택에 위치한 ‘보틀북스’.

    가게 정문으로 들어서면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손님을 맞이한다. 8평 남짓한 공간의 왼편으로 책이 가득하고 오른편에는 커피 등 음료를 제조하는 곳이 자리하는데, 말로 설명하니 뭔가 분리된 느낌이지만 실제는 경계 없이 어우러진다. 책을 읽으며 커피를 홀짝이기 충분한 크기의 2인용 테이블이 곳곳에 배치돼 있고, 여럿이 모여 토론하기 좋은 4인용 테이블도 손님을 반긴다.

    방금 당신은 이 글에서 여기가 ‘카페이거나 서점’이라는 정보를 얻었지만 이내 ‘여기에 이게 왜 있어?’ 싶은 물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사장님 이건 뭔가요?” “그건 때수건이요” 와 같은. 이날 동행했던 사진기자는 나한테 “너 장도리 봤냐”고 했는데 그건 철학자 니체를 떠올리며 주인장이 갖다 놓은 ‘망치 모양 볼펜’이었다는 에피소드를 더해본다.

    수제 때수건.
    수제 때수건.
    망치 모양 볼펜.
    망치 모양 볼펜.

    책방지기 채도운(32) 씨는 지난 2018년 12월 이곳에 자리 잡은 진주 보틀북스를 ‘애매한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애매하다’라는 건 보통 부정적 의미가 커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니 확신에 찬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애매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뭔가에 못 미치는, 모자란 느낌일지 모르겠는데 제가 정한 정의는 반대예요. 뭐든 할 수 있는, 실험적 의미가 담긴 그런 장소죠. 애매모호한 게 이곳의 정체성이에요.”

    도운씨는 본인 역시 ‘애매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본인이 이렇다 할 취향 없이 애매한 사람이라서 이 공간마저 카페 같기도, 서점 같기도, 공방 같기도 한 그런 애매한 공간이 된 것 아닐까 걱정했던 적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미치고는 이 애매한 공간을 더 알차게 꾸려나가는 매일이다. 그래서 이곳 보틀북스에는 때수건도 팔고, 우주를 닮은 휴대전화용 소품이나 직접 만든 납작연필이나 메모패드도 있다. 때수건은 도운씨의 어머니가 만드는 수제 때수건이다.

    카페 겸 서점이자 책방 겸 동네회관을 지향하는 진주시 문산읍 '보틀북스'./성승건 기자/
    카페 겸 서점이자 책방 겸 동네회관을 지향하는 진주시 문산읍 '보틀북스'./성승건 기자/
    납작 연필.
    납작 연필.

    보틀북스 왼편 책장을 보면 크게 4열, 각각의 열에 5행씩 총 20개 정도 기다란 책 진열대가 있다. 정면으로 놓인 책 표지에는 예쁜 글씨체의 쪽지들이 일일이 꽂혀 있다.

    “독립서점의 특징이죠. 북 큐레이션이라고 하는 건데 책방지기의 취향대로 책을 선별해 소개하고 추천해 드리는 거예요. 앞에 꽂힌 종이엔 책에서 좋았던 문장이나,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이유를 적어 첨부했어요. 그리고 글씨는 제가 쓴 게 아니고, 김환기 화백님의 폰트예요. 하하. 종종 제 손글씨인가보다 속으십니다.”

    서점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을 고려해 한 달에 한 번 큐레이션을 새로 한다. 보통은 주제보다는 장르별로 취향껏 추천하는 편이나, 장애인 지하철 파업 등 사회 현안이 있을 땐 장애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책을 추천하는 식으로 주제를 정한다. 지난해 도립미술관에서 안규철 조각가의 전시가 열릴 땐, 책을 읽고 전시에 갈 수 있도록 안규철 조각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다.

    보틀북스 내부. 4열 5행의 기다란 책 진열대가 시선을 끈다. 진열대 사이사이에 때수건, 메모패드, 소품 등이 놓여 있다.
    보틀북스 내부. 4열 5행의 기다란 책 진열대가 시선을 끈다. 진열대 사이사이에 때수건, 메모패드, 소품 등이 놓여 있다.

    책 전부를 다 읽어보고 들여오는 거냐 물었더니 “솔직히 말하면 9할은 읽어본 책이고 1할은 읽고 싶은 책”이라며 웃어 보인다. 9할은 어디 쉬운가 싶지만 도운씨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이곳을 알게 된 건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에는 진주 보틀북스가 나오는데, 이유는 작가가 ‘채도운’이기 때문. 책은 이 공간을 차리고 유지하면서 마주하는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담아내는데, 실제의 공간과 작가를 만나고 싶었다. 도운씨의 선택 하나하나가 특이했다고 할까.

    우선 진주에 책방을 차린 책방지기의 고향은 진주가 아니다. 아버지의 직업상 충북 예천과 진주 등을 오가긴 했지만 태생은 광주다. 그래도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과 중학교 졸업 이후 등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곳이라 이곳을 선택했다. 공공기관을 4년 다니다 그만뒀는데, 책의 표현을 빌리면 ‘직장생활이 뭐 같아서 퇴사했다’는 그는 저금한 돈과 퇴직금으로 이곳을 열었다. 책에는 ‘낭만을 찾으려고 카페를 차렸고, 생존을 위해 잡화상점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했지만 이날 대화 중 나온 “돌아보면 삶의 필요한 순간마다 책이 있었다”는 그의 말이 도운씨가 이곳을 차린 이유일 것이다.

    책마다 북 큐레이션이 돼 있는 모습.
    책마다 북 큐레이션이 돼 있는 모습.

    책 한 권을 팔아 얻는 수익은 2000원 정도. 한 집 걸러 만날 수 있는 카페를 차려 벌 수 있는 돈도 많지 않다. 이 공간을 꾸리고 1년여 뒤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상황까지 벌어지며 공과금도 제때 못 내는 신세가 됐지만 그가 이 공간을 지킨 것은 ‘사람’ 때문이었다. “사람에게서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언제나 날 일으켜준 것 또한 사람이었어요.” 도운씨는 어느샌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따뜻한 말을 하는 손님에게서 따뜻한 말이 주는 위력을, 아이를 향한 손님의 눈에서 사랑을 담은 눈빛을 배웠다. 텀블러를 내밀고 재활용 쇼핑백을 모아주는 손님들에게서 지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이라는 건 전염성이 높아서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도 사랑을 갖고 온다. 보틀북스가 ‘마을회관’이 된 것도 이 이유다. 한국사 만점자, 사진작가, 영문학 전공자인 손님들은 시간을 쪼개어 모임을 열고 자신들의 재능을 사람들과 나눈다. 도운씨만큼 이곳에 진심인 제2의 책방지기들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틀북스의 독서모임은 스무 개 정도, 참여자만 200명에 달한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도운씨는 지난 2022년 말 이곳의 임대차 계약을 두 번째로 갱신했다. 올해 말 계약기간이 만료되지만 역시 갱신할 계획이다. 지난번 갱신날 단골손님 한 명은 “당신 삶 앞으로 2년 또 저당잡혀 버렸네?”라는 말을 건넸다. 오늘도 도운씨는 이곳 보틀북스에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을 많은 사람들을 기다린다. “저에게도 손님에게도 이곳이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구나’ 느낄 수 있는 힘이 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소 진주 문산읍 월아산로 1047-14

    영업시간 월~금 9:00am~16:30pm

    (토·일 정기휴무)

    instagram @bottle_books


    채도운 대표 인터뷰

    “매출 0원 시절 엄마가 손수 만든 때수건, 지금은 이곳 인기템”

    카페 겸 서점이자 책방 겸 동네회관을 지향하는 진주시 문산읍 '보틀북스'./성승건 기자/
    카페 겸 서점이자 책방 겸 동네회관을 지향하는 진주시 문산읍 '보틀북스'./성승건 기자/

    -가게 이름을 ‘보틀북스’로 정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병에 담긴 음료랑 책을 파는 공간이란 단순한 의미였는데, 유명 커피 체인점 ‘블루보틀’과 어감이 비슷한 점도 노렸습니다. 실제 블루보틀인 줄 알고 찾는 손님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때수건을 만드는 연유는요?

    △초창기에 영업이 제 맘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하루 매출 0원인 날, 엄마 아빠가 마신 커피에 값을 매기기도 했죠. 이런 저를 보고 부모님도 고심하셨던 것 같아요. 본인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어느 날 엄마가 원단을 떼오더니 밤새 천마스크랑 때수건을 만드셨어요. 사실 저는 감성 넘치는 카페에 천마스크랑 때수건을 팔라 하니 “이런 걸 어디다 가져다 팔아”라고 소리치기도 했는데 아빠가 “네 엄마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한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때수건을 갖다 팔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인기템이 되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매우 귀여운 알바생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ㅎㅎ 넵. 올해로 6세 됐습니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면 아이가 간혹 행주로 테이블을 닦거나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길래 알바로 채용했었습니다. ‘쪼꼬미 알바생’으로 소문났었지요. 손님들이 뽀로로 빵이며 초코바 같은 간식을 가져다 주셔서 무척이나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글= 김현미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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