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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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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어느 선생님에 대한 기억- 윤재환(의령예술촌장)

  • 기사입력 : 2023-09-18 2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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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이다. 그리고 가을이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은 가을정원에 사루비아 꽃을 피웠다. 사루비아는 깨꽃이라고 하는데 꿀풀과에 속한 여러 해 살이 풀이다. 흔히 영어식 이름이 샐비어인데 일본어식 표기가 사루비아라고 한다.

    맑게 빛나는 가을 햇살을 품고 낮 산책을 가는데 의령서동생활공원 참살이 마당 분수대에 놓인 화분에 사루비아 꽃이 피어 있었다. 꽃술 두 개를 따서 꽁무니를 입에 물고 꿀을 빼 먹었다. 달달한 게 참 좋았다. 꽃도 결국에는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해 열매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정을 해야 하는데 꽃 속에 꿀을 만들어서 벌을 유혹한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꿀을 찾아간 벌은 꿀을 먹는 동안에 꽃을 수정시킨다. 그렇게 꿀을 얻고 자연스럽게 수정을 시켜주는 공존의 시간이다. 그 자연의 오묘한 시간에 경의를 느낀다.

    나는 어린 시절에 한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두 개 있다. 첫 번째 기억은 사루비아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73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학교 교실 옆 정원에 사루비아 꽃이 빨간 색깔로 예쁘게 피어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사루비아 꽃은 꽃 속에 다시 꽃이 있는 일종의 2중으로 된 꽃이다. 그 예쁜 꽃 속에는 꿀이 들어 있었다. 그 속에 있는 꽃을 따서 꽁무니를 물고 빨아 먹으면 달달한 액체가 나오는데 꿀이다. 지금이야 꿀이 흔해서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꿀을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로 꿀을 먹을 수 있는 길은 자연에서 직접 채취해서 먹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만난 사루비아 꽃에도 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사루비아 꿀을 빼 먹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오시더니 꽃을 훼손했다며 벌을 주었다. 그 선생님은 꽃밭에 무릎을 꿇게 하여 양손을 든 채 꽃을 입에 물고 있도록 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벌을 섰다.

    또 하나는 추운 겨울날 난로에 불을 지핀 기억이다. 12월쯤이었다. 그때는 교실에 둥근 쇠난로가 있었는데 나무로 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는 방식이었다. 또 연료로 쓰는 나무는 학생들이 매일같이 서너 조각을 가져왔다. 그렇게 불을 지펴서 추위를 물리치곤 했다. 어느 추운 날 아침이었다. 너무 추워서 선생님이 교무회의에 간 사이에 불을 지폈다. 따뜻했다. 교무회의를 마친 선생님이 오셨는데 누가 불을 지폈는지 교단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또래들 일곱 명 정도 나갔다. 그리고는 누가 성냥불을 켰는지 물었다. 내가 켰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실 내에 국기봉으로 설치를 해둔 야문 대나무로 나의 엉덩이에 소위 ‘빠따’를 힘껏 내리쳤다. 그 국기봉을 빼서 나에게 내리 쳤는데 열한 살 그 어린 나의 엉덩이에 한 스무 대 정도 세차게 내리쳤다.

    그 선생님의 이름은 김O화였다. 키가 크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게 완전 운동선수같이 민첩하고 날렵한 사람이었다. 그 선생님에게는 우리들의 인권은 없었다. 그 때 우리는 그 선생님에 대한 사랑스런 제자가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한 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다 그렇겠지만 선생님에 대한 기억 중에 잘 대해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흐려져가는데 비해 그렇게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안겨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더 생생해지고 더 또렷해진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잘 성장해서 지금껏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선생님을 찾고 싶었다. 두 차례나 시도해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찾게 되면 꼭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어른으로서 선생님으로서 어린 학생이요 제자인 나를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은 없다. 그래도 잘 살아왔고 어쩌면 덕분에 더 강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좋은 기억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참 오랜만에 만난 사루비아 꽃이 더없이 예뻤다. 그것을 따 먹은 꿀이 참 달고 맛도 좋았다. 아름다운 시절의 행복한 맛이었다.

    윤재환(의령예술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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