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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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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6) 정종한 화가

80년 세월 품은 이곳, 전통 향한 오색빛 자부심이 반짝

  • 기사입력 : 2023-09-13 08: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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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하얀 수건으로 자개농을 닦았다. 그 옆에 누워 바라본 은색이기도, 파란색이기도, 자주색이기도 한 오색빛 자개는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보석이었다. 정종한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더듬었다.

    그는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번영하고 쇠락하는 현장을 지켜보며 자라왔다. 그래서 옻칠과 자개만으로 수놓는 그의 화폭은 나전 장인의 땀방울만큼, 자개의 광휘만큼 빛나던 그 시절을 향한 회귀(回歸)의 여정이다. 여정은 이곳 정 작가의 마산 작업실에서 시작됐다.

    그의 작업실은 바다로 둘러싸인 고향과 같이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마산만이 보인다. 옻 냄새가 진득한 작업실에는 어린 시절 유영하던 바다를 향한 순수와, 해수면에 떠오른 달의 형상이 가득하다.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20년 전 버려진 자개장 보고
    전통문화 살릴 방법 고민하다
    옻칠·자개 이용한 작품 구상
    작업실 한쪽에 두고 초심 다져

    친구 소개로 구한 마산 ‘옛날 집’
    직접 수리해 작업실로 만들어
    작년엔 휴게실 겸 전시실 공사
    바닥에 자개 깔고 공간 개조

    전통기법에 전공인 서양화 접목
    자개장이었던 삼촌 조언도 구해
    2009년 일본서 첫 개인전
    바다·달항아리 품은 ‘순수’ 추구

    ◇작가의 손때 묻은 작업실

    - 작업실이 ‘옛날 집’인데, 어떻게 구하게 됐나.

    △15년 전 옻칠과 자개를 이용한 작품을 구상하며 여러 실험을 하던 시기라, 새로운 작업실을 찾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는데 마침 친구 어머님이 살던 마산집이 비어있는 상태라고 찾아가 보라더라. 기와지붕에 비가 새지 말라고 천을 대고 그 위로 타이어를 올려놓은 옛날 집이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1945년에 만들어져 역사를 품고 있기에 좋았고, 마산 바다와도 가까워 좋았다.

    - 작업실을 보수하는 과정도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됐다 보니 집이 허름해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다. 작업실로 쓰기 위한 공간을 넓히기 위해 방을 연결하고 천장을 뜯고, 그런 수리 과정을 거쳐 지금의 공간이 완성됐다. 손때가 묻었다 보니 더 정이 가는 것 같다.

    정종한 작가의 휴게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의 휴게실./성승건 기자/

    - 휴게실이 전시장같은데 이렇게 꾸민 이유가 있을지.

    △휴게실은 작년에 공사해서 만든 곳이다. 바닥에 있는 자개도 손수 넣었다. 예전에는 이곳도 작업실이었는데 옻칠 후 마르는 과정에서 냄새와 독기 때문에 작업만 하고 집으로 가야 했다. 이 작업실에 오래 있고 싶기도 했고, 내 결과물을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기도 해서 휴게실 겸 작은 전시실로 꾸며봤다.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멀리 바라보면서 다음 작업은 이렇게 해야겠다고 구상을 하는데 지금처럼 작품을 걸어놓으니 그 몰입을 작업실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됐다.

    - 작업실에는 얼마나 자주 오는지.

    △매일 들른다. 자개작업의 경우 시간이 얼마만큼 투자되느냐에 따라 질이 다르다. 자개작업부터 아교를 바르고 그 위를 인두로 지질 때 작은 틈새가 있는지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작업실에서 집까지 걸어서 20~30분 거리라 작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영감이 떠올라서 다시 작업실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종한 작가가 자개를 필요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자개를 필요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자개를 필요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자개를 필요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전통을 향한 자부심이 작가를 움직인다

    - 작업실 한쪽에 자개장 문짝과 함이 보인다. 작업실에 둔 이유가 있나.

    △이 자개장은 자개와 옻칠을 시작한 계기다. 20년 전, 아파트 앞에 누군가 버리려고 내놓은 자개장을 봤다. 내 삼촌도 통영의 자개장이었고 그 노력과 자부심을 보며 자라왔다. 옛날에는 자개장이 부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골칫거리가 된 모습이 속상했다. 허락을 받고 자개장 일부를 들고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이 전통문화를 살릴 길이 없을까 고민하고 옻칠과 자개를 이용해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옻칠과 자개로 예술을 이어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전통문화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작업실 한쪽에 둔 것은 그때의 초심을 잊지 말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옻칠과 자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 삼촌이 자개장이었다면 조카가 옻칠과 자개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반응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려를 많이 했다. 옻칠을 하고 자개를 세공하는 일이 힘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양화를 배우고 왜 굳이 힘든 일을 사서 하냐’는 시선이었다. 초창기에는 삼촌이 늘 작업실에 왔었다. 자개 절삭기도 그때 가져온 것인데, 내가 옻칠과 자개 공법에 대해 혼자 연구를 하면서 막힐 때마다 조언을 구하니까 알려주는 즐거움도 있고, 조카가 긴 시간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지금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 일본이라고 들었다.

    △몇년간 연구를 하고 성과물을 낼 때 즈음, 기회가 닿아 지난 2009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도쿄와 교토에서도 전시를 했다. 일본은 해외에서 ‘옻칠의 나라’라고 인정받으며 자부심과 관심이 크다. 예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옻칠’이라고 한다면 공예품에 쓰이는 검은색과 붉은색만을 떠올려서 ‘옻칠로 그렸다’고 설명해도 ‘이건 물감이죠?’라는 물음이 돌아오더라. 반면 일본인들은 다양한 색감을 쓴 옻칠 작품을 보면서도 옻칠인 것을 안다. 사실 옻칠은 일본보다 더 빨리 조선시대에서 정점을 찍었던 분야인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전통 예술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종한 작가./성승건 기자/
    정종한 작가./성승건 기자/

    ◇잰걸음으로 향하는 그날의 순수

    - 서양화를 전공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법으로 방향을 굳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서양화를 전공했던 학생 때부터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고민이 많았다. 서양화를 전통적인 미에 접목한다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 처음에 그림에 먹을 많이 사용했었다. 먹의 진함과 번짐에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그때는 그림 자체가 많이 어두웠다. 옻칠을 사용하던 초창기 그림도 보면 색감이 지금보다 칙칙하다.

    정종한 작가의 작업실에 세워둔 자개장 문짝. 20년 전 아파트 앞에 버려진 것을 들고 왔다고 한다.
    정종한 작가의 작업실에 세워둔 자개장 문짝. 20년 전 아파트 앞에 버려진 것을 들고 왔다고 한다.
    전시장처럼 꾸민 휴게실 바닥에 자개가 박혀 있다.
    전시장처럼 꾸민 휴게실 바닥에 자개가 박혀 있다.

    - 지금의 작품은 색채가 밝은 편이고, 최근 작품에는 바다와 달항아리가 주된 배경으로 보인다.

    △그렇다. 초창기에는 다소 어두운 색채로 그림을 그렸으나 반복되는 작업을 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즐거움을 얻어야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즐거워졌고 그림도 점점 밝아졌다. 그러다 보니 ‘순수’를 찾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던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달항아리 또한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꿈을 꾸었던 순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 앞으로 그리고 싶은 방향이 있을까?

    △마음이 가는 쪽으로 붓이 흐르지 않을까 싶다. 지금으로는 바다에 관한 것을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싶다. 이제야 바다의 맛을 조금 알 것 같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중후함과 바다에 부서지는 윤슬도 더 그리고 싶다. 특히 제2의 고향인 마산만을 배경으로 돝섬과 무학산이 보이는 마산의 바다를 그려보고 싶다.

    글= 어태희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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