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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 뒤안길의 인연들- 김수환(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3-06-15 20: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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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역에서 왼쪽으로 가면 마산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진주다. 내 고향인 함안은 마산이 생활권이기 때문에 함안과 마산을 오가는 기차나 버스는 언제나 혼잡했다. 함안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나면 기차는 텅 빈 채 진주 쪽으로 기적을 울렸고, 진주 쪽에서 오는 빈 기차는 함안역에서 손님을 가득 실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때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많이 탔기 때문에 사람들을 태웠다는 말보다 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마산 지역에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진주, 내가 운명처럼, 관성처럼 오가던 길과 반대편에 있는 진주는 막연히 그리운 곳으로 언제라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러다 내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고3 시절, 그때 나는 즉흥적으로, 감성적으로 대학을 선택하고, 되는 대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진주다.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청춘, 늘 불안했던 미래, 무기력했던 시간들은 칠암동과 가좌동 곳곳에서 내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지금의 경상대 의대 뒷문 앞에 있던 칠성집이라는 술집은 우리들의 본부였고 도피처였다. 공부하지 않는 대학생들이 약속도 없이 잘도 모여들던 칠성집, 대학신문을 만든다는 핑계로 몰려다니면서 공부 빼고는 다 했던 것 같다. 칠성집 일곱 개의 별은 끝내 빛나지 않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각하게 그때를 후회하는 사람은 지금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은 함안이지만 내 생각, 사고의 출발지는 마산이다. 학생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 다니기 어렵던 시절, 등교하느라 제비산 자락의 민영주택 집에서 출발, 북마산 큰길을 나서서 태양극장, 중앙극장, 마산모자센터, 포교당, 3·15 의거탑을 지나, 완월동 언덕배기에서 만나게 되는 학교가 ‘중앙 몽돌이’, 나의 모교 중앙중학교다. 하굣길은 매일 어울리는 친구 몇과 자산동 산을 넘어 화장터를 지나 의신여중, 북마산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차례대로 헤어지고 제일 멀리 가는 친구는 봉암동까지 걸어가야 했다. 교회의 뾰족탑이 제일 높았던 그때의 마산은 함안만큼이나 내게는 정겹고 따뜻한 곳이다.

    함안, 마산, 진해, 진주, 등 고만고만한 동네를 번갈아 살면서 고만고만하게 나이를 먹어버렸다. 나는 한 번씩 이유는 모르지만 막연하게 그리워하거나, 아니라도 얼마간의 호의를 가지고 생각한 것들과는 그게 언제든지 인연으로 맺어진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함안역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만나는 진주가 그렇고, 지금은 아내가 된 휴가 때 처음 본 그 예쁜 후배의 청순한 미소도, 접어두었던 문학을 다시 펼쳐 들면서 만난 한 시인도, 끝도 없이 막가던 그 시절의 친구들도 그렇다.

    과거 진주목 시대에는 진주가 영남의 중심지였고 경남도청도 진주에 있었다. 개천 예술제, 진주농민운동, 형평사운동 등 한때 역사를 견인했던 모든 영화가 지금은 다 옛이야기가 돼 버린 도시 진주, 그리고 지금은 창원특례시 마산회원구, 창원특례시 마산 합포구로 불리고 있는 옛 북마산, 구마산, 신마산 시절의 거리와 사람들. 그 뒤안길에서 아는 사람으로도 만나고 모르는 사람으로도 만났다가, 알고도 헤어지고 그런 줄도 모르고 헤어져 간 크고 작은 나의 옛 인연들이 진주와 마산에서 끝없이 행복하면 좋겠다.

    김수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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