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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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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공간] 마산 수정마을 공유공간 ‘수정과’

주민 사이 ‘마음의 벽’ 문화로 허무는 ‘치유의 사랑방’

  • 기사입력 : 2023-06-08 20: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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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소 유치 놓고 10여년간 이어진 주민 갈등
    2020년부터 공동체 회복작업 시작
    2021년 ‘팀 수정과’ 결성, 올해 ‘수정과’ 문 열어


    마을청년회관·풍물방으로 쓰던 40년 된 건물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대청소하고 새 단장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페인트칠·전기 작업


    어촌살이·노래대회 등 다양한 행사 기획
    원데이클래스·굿즈 판매 수익은 발전기금으로
    할매카세·한글교실·어린이 환경교육도 구상 중


    ‘이름을 잃는다’는 ‘위기를 겪는다’와 동의어다. 이곳 수정마을도 그랬다.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이 마을의 이름은 수정(水晶)처럼 맑은 잔잔한 앞바다에서 따왔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매립공사가 시작됐고, 수정을 품은 바다가 사라졌다. 위기는 곧장 들이닥쳤다. 2006년 조선소 공장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눠 다투기 시작했는데, 그때의 갈등의 골은 향후 10여년간 이어질 정도로 깊게 파였다.

    갈등 속에서도 주민들은 잃은 이름을 되찾는 노력을 이어갔다. 매립으로 사라진 ‘수정(水晶)’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대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고치는 의미의 ‘수정(修正)’을 시도했다. 당시 시와 조선소 측은 매립지를 공업용지로 용도 변경을 추진 중이었는데,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해 4년만인 2011년 토지용도변경 포기 결정을 내리는 성과를 거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의 공유공간 ‘수정과’.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바닥은 수정마을 앞바다를 상징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의 공유공간 ‘수정과’.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바닥은 수정마을 앞바다를 상징한다.

    2020년 결성된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 추진위원회’는 지금까지 고치어 정돈하는 의미의 ‘수정(修整)’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등 돌렸던 주민들이 10여년 만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고, 함께 수정마을의 미래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021년 탄생한 청년단체 ‘팀 수정과’는 마을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이어가며 마을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수정마을에서 작은 공유공간 ‘수정과’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수정과는 전통음료가 아닌 ‘수정마을과 함께, 수정주민과 함께하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정과는 건축사보, 문화축제기획자, 환경교육사, 지역활동가, 제로웨이스트샵 대표, 도시계획연구자 등 다양한 직종을 가진 총 7명의 팀원이 함께 운영한다. 7일 방문한 공간에는 6살 때부터 수정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슬(36·마을활동가) 대표가 반갑게 맞아줬다.

    ‘수정과’ 건물 옆 고목 아래에 평상이 놓여져 있다.
    ‘수정과’ 건물 옆 고목 아래에 평상이 놓여져 있다.

    이 공간은 1980년대 마을청년회관으로 지어졌다가 풍물이 유행하면서 풍물방으로 쓰이던 40년이 된 건물이다. 2006년 이후 주민들간 갈등이 커지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됐는데,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팀 수정과’가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새단장 대청소를 진행해 공유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지난 4월까지 가오픈 기간을 거쳤고, 5월부터 상시 문을 열고 주민과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수정과 건물 옆에 우직하게 자리잡은 고목과 넓은 평상도 꽤 이목을 끌지만,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바닥은 수정을 품은 마을 앞바다를 표현해 의미가 크다. 이 대표는 이 공간을 마을 사랑방을 표방한 카페라고 설명한다. 그는 “마을 내에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일만한 곳이 없어 수정마을만의 사랑방 느낌을 살려 디자인했다”며 “마을 할머니들이 페인트 칠을 해주시고 할아버지들이 전기 작업을 하는 등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수정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방치된 풍물방을 ‘수정과’로 새단장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수정과/
    수정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방치된 풍물방을 ‘수정과’로 새단장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수정과/
    자원봉사자들이 방치된 풍물방을 '수정과'로 새단장하기 위한 대청소를 하고 있다./수정과/
    자원봉사자들이 방치된 풍물방을 '수정과'로 새단장하기 위한 대청소를 하고 있다./수정과/

    수정과만의 특징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문하는 어느 누구나 커피나 차를 제공받는 대신 내고 싶은만큼 저금통에 돈을 넣기만 하면 된다. 돈이 없다면 무료로 이용해도 무관하다. 수익 활동은 사전예약 후 진행되는 레진아트 공예·원석팔찌 공예·가죽 공예 원데이클래스와 수정마을 굿즈 판매가 있다. 이렇게 모은 수익금은 모두 수정마을 발전기금으로 사용된다. ‘팀 수정과’ 때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문화활동은 공간이 생긴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3월에는 어촌살이 프로그램을 4회에 걸쳐 진행했고, 5월 8일 수정마을 노래대회를 개최했다. 5월 20일과 21일에는 타지역 문화기획자와 함께 골대 없는 공놀이를 하며 수정만 매립지를 오가는 ‘길이 없는 땅: 수정만’ 문화예술 기획행사도 함께했다.

    앞으로는 ‘오마카세(맡김차림)’를 오마주해 수정마을 할머니를 셰프로 모신 후 평상에서 마을 음식을 하나씩 먹어 보는 ‘할매카세’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음악회, 노래교실·한글교실, 어린이 대상 환경교육 등을 구상 중이다.

    ‘수정과’에서 판매하는 수정마을 굿즈들.
    ‘수정과’에서 판매하는 수정마을 굿즈들.

    취재를 마치자 이슬 대표는 마을을 돌며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눴다. 막힌 배수관을 고치는 주민들, 비료를 옮기는 이장, 경로당에 모여 있는 주민들과의 대화는 지극히 평범했다. 이슬을 가까이서 보면 품고 있는 세상이 보인다. 수정에 맺힌 이슬도 마찬가지로 수정을 담은 채 빛난다. 매립으로 사라진 수정(水晶)은 수정과 함께하는 이슬 대표의 눈과 주민들이 흘린 땀에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이슬 수정과 대표

    주민·외지인 모두 부담없이 모여 재밌게 어울리는 공간 만들어 갈게요

    6살 때부터 수정마을서 성장한 청년… 주민들 닫힌 마음 두드리는 마을활동가로

    이슬 수정과 대표
    이슬 수정과 대표

    Q. 6살때부터 수정마을에서 살았다. 학창시절 마을은 어땠는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마을이 정말 화목했다. 운동회를 하면 모든 주민들이 모여서 먹고 놀고 했었다. 주민간 갈등이 심하다는 건 20대 때 마을에서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됐다. 다만 어른들의 일이라 생각하고 깊게 알려고 하진 않았다. ‘금방 해결되겠지’란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사안의 심각성은 2021년 공동체 활성화에 관심을 가질 때 알게 됐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Q. ‘팀 수정과’는 어떻게 결성됐는지?

    2021년 10월에 마을 활성화를 위한 청년캠프가 열렸는데 그때 모였던 멤버들이다.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창원·마산에 살고 있어 틈틈이 만나 수정마을 공동체 활성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Q. 공간이 생기면서 달라진 점은?

    공간이 없었을 때에는 마을 주민들을 개개인별로 찾으러 다녀야했다. 지금은 주민들이 이 공간에 있다는 걸 아니 지나가면서 방문해주고 한다. 주민들이 어려워 하는 서류작업 등도 공간에서 같이 컴퓨터를 보며 내용을 수정할 수 있어 주민 만족도도 높다.

    Q. 마을 활동가로 활동하며 뿌듯했던 기억은?

    지난해 주민들과 노래교실 강사를 했을 때 한 주민이 “이 선생 고맙다. 이 선생 아니었으면 우리 이렇게까지 못했다”고 말해주시고 추석을 맞아 먹을 것들을 챙겨줬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해당 주민이 그런 말과 행동을 잘 안하시는 성격이라고 들어 더 감동이었다. 많은 분들이 예전보다 확실히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

    Q. 어떤 공간이 됐으면 좋겠는지?

    이 공간을 처음 목적대로 마을주민들도 함께 관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앉아 있으면 들어오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인데 여느 카페처럼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앞으로 외지인과 주민 모두가 어울리며 놀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글= 김용락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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