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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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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에세이] 폐허 가꾸기- 류미연 소설가(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소설 당선)

  • 기사입력 : 2023-05-11 19: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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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그것이 빈터라고 생각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고스란히 맞기만 할 뿐, 새잎 하나 트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황폐해졌다. 가만히 들여다봤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누가 던졌을까. 크고 작은 돌들이 굴러다녔다. 그랬구나. 그래서 아팠구나 싶었다. 화가 났다. 수많은 투사(投射)를 했다. 어설프고 미숙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하니 나였다. 내가 나의 폐허를 만들고 있었다.

    돌들을 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어떨 땐 기우뚱해서 현기증이 났다. 그러면 멈추고 들여다봤다. 자주 그랬다. 무게중심이 맞으면 편안했다. 나의 폐허에 무게 중심을 맞추는 일. 읽거나 쓰는 일이었다. 그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가벼워졌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건 마음의 폐허를 가꾸는 작업이었다. ‘온전한 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잘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멈추어서 나를 나로 바라봐 주었다. 그것이 좋았다. 그래서 상을 받거나 등단하는 일에는 관심이 적었다. 내 손끝에서 글들이 모여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했고, 그런 것들을 좀 더 잘하고 싶었을 뿐. 그런 마음을 신(神)이 알아줬나 보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주어졌다. 경남신문에 투고한 ‘배웅’이 2022년 소설 당선작으로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냉정하게 통화하다 감동으로 종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목마른데 물 두 컵 마신 기분이란 지도 선생님의 소감을 들으며 나보다 주위에서 더 많은 기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신춘 당선의 기쁨은 딱 한 달용이었다. 등단이라는 출발선에서 무수히 들려오는 소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아득함에 오히려 맥이 풀렸다. 몇 번 시도한 공모전에 실패하면서 미리 주눅도 들었다. 아쉽게도 어떤 곳에서도 원고청탁 같은 건 없었다. 글은 더 엉뚱해지고 문장은 제 갈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머릿속은 무성히 자라는 잡초들에 점령당해 차라리 묵밭이 되나 보았다. 꼬리표 하나 달고 겁 없이 설쳤던 건 아닌지 반성을 거듭하며 2023년을 맞았다.

    다시 나의 폐허를 본다. 식목된 꿈나무 한 그루가 힘겹게 서 있다. 빈약했다. 부지런한 손길과 따뜻한 가꿈을 기다리고 있다. 소설을 쓴다는 건 글을 짓는 노동이라고 나무가 말한다. 그만큼 참아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올해도 ‘난계소설 반’에 등록했다. 나의 문장은 아직 검증을 필요로 하고, 문우들의 격려가 힘이 된다. 아직은 그렇다. 그러던 중 소식 하나가 찾아왔다. 울산문화재단에 발간지원신청을 했는데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나의 졸작을 당선시켜 준 경남신문의 힘이 컸다. 내 이름으로 된 단편소설집의 출간. 기쁘기도 하지만 부담은 더 크다. 그동안 써 놓았던 글들을 꺼내봤다. 먼지가 폴폴 난다. 수많은 ‘다듬음’과 ‘가꿈’이 필요하다. 그럴 능력과 각오가 주어지길 바란다. 올해엔 나의 나무에도 꽃 하나 피길 희망해 본다.

    류미연 소설가(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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