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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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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울 할머니- 조용희(신창여중 교장)

  • 기사입력 : 2023-05-11 19: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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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 5월, 문득 포근한 햇살 사이로 왜소하지만, 당찬 울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울 할머니는 3·1 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에 쌍둥이의 언니로 태어나셨고, 키가 자그마하고 동백기름 바른, 쪽 찐 머리를 늘 하고 다니셨다.

    나의 어린 시절은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던 때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북적북적 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중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던 일은 지금도 행복하고 그리운 추억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딸 쌍둥이라 배를 곯아서 못 컸다는 어린 시절 얘기,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던 해 일본에서 고모랑 아버지랑 배를 타고 몇 날 며칠이 걸려 한국으로 넘어오며 고생한 젊은 시절 얘기, 교육받지 못한 세대라 혼자 어깨너머로 생활에 필요한 숫자를 익혔다는 한 섞인 얘기 등 할머니의 이야깃주머니는 무궁무진했다.

    나의 유년 시절 또한 할머니와 함께 보낸 추억이 가득하다. 집안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와 같이 학교 소풍도, 운동회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나와 할머니와의 관계는 누구보다 돈독했으며 나에게 당신의 소망을 종종 이야기하곤 하셨다. 손녀는 할머니를 닮지 않고 키 크길 바라셨고, 나라 잃은 슬픔을 알기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라셨고, 교육받지 못한 아쉬움에 더 많이 배우길 바라셨다.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 중학생이 되는 손녀에게 손목시계를 사 주시며 교복 입은 모습을 뿌듯하게 보시던 할머니. 손녀의 대학 시험 발표 날 전화 너머로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서 나보다 더 기뻐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울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은 할머니의 사랑과 따스함을 아직 잊지 못해서일까? 어느 날,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면서 때론 자식들도 못 알아보시던 때였다. 남편이랑 병문안 갔을 때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도 남편의 두 손을 꼭 잡고 “배 서방, 우리 손녀 잘 부탁하네.”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그 사랑을 먹고 자란 할머니의 손녀가 이제 할머니가 되었네요. 할머니! 할머니에게 받은 그 사랑, 이제 우리 손주들에게 나눠주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키보다 마음이 더 큰 할머니가 될게요.

    조용희(신창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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