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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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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영차 영차! 줄을 당겨라- 서정매(한국민속음악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23-05-10 19: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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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 운동회 때 최고의 백미는 줄다리기였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우레 같은 화약총 소리가 ‘탕’하고 터지면, 다함께 ‘영차! 영차!’를 외치며 온몸으로 줄을 당겼다. 사이가 소원했던 친구들도 한팀이 되면,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 협동과 단결이 저절로 모아지는 순간이었다. 줄다리기의 도구는 오로지 긴 밧줄 하나! 최소한의 재료로 최상의 단합을 이끌어낸다.

    줄다리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줄다리기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세시풍속 및 한시 등에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곳곳에서 정월대보름마다 이루어져왔던 각 마을별 공동체놀이였다. 1941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서는 1920~1930년 당시 전국을 통틀어 161개의 줄다리기 행사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산악지대보다는 농사를 많이 짓던 평야에 더 많았다. 벼를 수확하고 난 뒤의 부산물인 지푸라기가 줄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줄다리기는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에서도 줄다리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재료로는 공통적으로 짚이 사용된다. 줄다리기가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줄다리기〉는 2015년 12월 2일 벼농사 문화권인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으로 등재되었다.

    한편 한국의 줄다리기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월대보름이면 마을마다 당산제와 함께 이루어졌다. 줄다리기에 사용한 줄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 그 줄을 함부로 방기하지 않았다. 마을의 당산나무나 입석에 감아 줄이 용으로 거듭나 승천하기를 기원했고, 소나 말에게 그 줄을 먹여 건강을 기원했고, 논밭의 거름으로 사용하여 전답의 비옥과 풍요를 기원하였으며, 그 줄을 잘라 집으로 가져와 제액초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결국 줄다리기에는 민속신앙도 깃들어 있다.

    현재 한국의 줄다리기는 총 6종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해오고 있다. 이 중 삼척과 당진의 2곳 외에 창녕, 밀양, 의령, 남해 등의 4곳이 경남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각 줄은 그 모양과 형태가 동일하지 않으며, 지역별로 각각 차이가 있다. 경남지역의 줄다리기 중에 특색이 될 만한 줄다리기를 소개한다면 〈의령큰줄땡기기〉를 들 수 있다.

    〈의령큰줄땡기기〉는 의령군의 1읍 12면 내의 116리 588반 239개의 마을주민들이 모두 줄의 제작에 참가한다. 각 주민들이 만든 ‘작은 줄’은 넓은 공터로 이동하여 그 줄로 다시 하나의 큰 줄을 만들면 비로소 줄다리기를 위한 ‘큰 줄’이 완성된다.

    의령의 큰 줄은 길이 251m, 무게 54.5t에 달하며, 2005년에 세계 최대의 줄다리기 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한편 작은 규모의 줄다리기도 있다. 밀양의 〈감내게줄당기기〉이다. ‘게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게’ 모양으로 된 줄의 형태로 줄다리기가 이루어진다. 게 몸통을 중심으로 양쪽의 게 다리 5개 줄을 서로 당기는 형태이다. 줄이 게 모양이므로 서로 마주보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줄을 걸고 서로 등지고 엎드려서 당긴다. 그 광경이 매우 익살스러워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적인 놀이이다.

    세계 최대의 줄이든, 게줄 모양의 줄이든 줄다리기를 하는 이들은 모두 웃음꽃을 피운다.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줄을 당겨서 순간적으로 승부가 이루어지는 만큼 줄을 당기는 순간은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모르는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웃으며 함께 놀 수 있는 놀이, 화합과 친목의 대동놀이 줄다리기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서정매(한국민속음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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