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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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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눔 프로젝트] (88)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는 하얀이

태어난지 얼마 안돼 시설에 맡겨진 소녀, 엄마가 해주는 밥 먹는 게 버킷리스트

  • 기사입력 : 2023-05-08 21: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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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 이혼 후 엄마 따라 나왔지만 상황 어려워
    줄곧 시설서 생활… 3년 전 글쓰기 취미 생겨
    재미로 쓰던 글, 잇단 대회 입상으로 자신감
    선생님·친구들과 시로 마음의 거리도 좁혀
    약한 사람 지켜주고 싶은 여고생 꿈은 군인
    “얼른 커서 돈 벌어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게 제 인생 버킷리스트예요. 얼른 커서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하얀(17·가명)이는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은 아빠를 따라갔고, 하얀이는 엄마를 따라 나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얀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에 맡겨졌다.

    이후 줄곧 시설에서 자란 하얀이는 3년 전 지금의 복지법인으로 이관돼 왔다. 하얀이는 “새로운 곳이라 걱정이 있었지만 선생님들께서 잘해주셨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는데 이곳에 오고 난 후 많은 걸 체험하게 해주셨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얀이는 지금의 거처로 온 이후 글쓰기라는 취미가 생겼다.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에 서툴렀던 하얀이는 글쓰기와 문학 수업을 접하면서 글로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재미로 쓰던 글이 대회에 잇따라 입상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매일 같은 방을 쓰는 언니와 시작(詩作)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만큼 시에 대한 애정이 크다.

    하얀이의 담임선생님은 “하얀이가 인문학에 관심이 커 자신의 내면을 내면화해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가 많아요. 평소에도 SNS에 작품활동을 하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외부에서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고요”라고 설명했다.

    시 관련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품을 차근차근 보기도 하고 그동안 쓴 시를 게재한다. 이따금씩 시인들이 그 글을 보고 개인 메시지를 통해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은 “하얀이가 학교 선생님들이나 친구에게 시를 보여주는데,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인 것 같아 애틋하죠”라고 말했다.

    하얀이의 꿈은 군인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돕고 지켜주고 싶어서다. 하얀이는 “제가 뭘 잘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잖아요. 저처럼 길을 못 찾는 사람이 있다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어요”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하얀이는 호되게 사춘기 홍역을 치렀다. 감정표현이 미숙해 친구들과 문제가 발생했고, 시설에서 나와 학교 친구들과 노는 게 새롭고 좋아서였다. 하얀이는 “제가 생각해도 많이 엇나갔거든요.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선생님들 덕분이었어요.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으셨어요. 이제는 마음 잡고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얀이의 하루는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한다.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집에서 나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도장으로 향하는데, 어린 아이들을 도와주면서 합기도를 배우고 있다. 군인이 되기로 한 후 체력단련에 힘쓰기 위해 마라톤과 합기도 등 운동하는 시간을 늘렸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을 법한데 하얀이는 이에 대해 “어른들 일이라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엄마도 힘들지 않을까요? 돈을 벌면 엄마랑 같이 사는 게 꿈입니다”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하얀이는 곧 떠날 엄마와의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얀이는 “엄마가 항상 보고 싶은데 막상 얼굴을 보면 어색해서 말도 제대로 못해요. 그러다 헤어지면 눈물이 터져나오더라고요. 이번 여행에선 엄마랑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싶어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얀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직은 불안정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여린 학생입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글쓰기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학생에게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 학생이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주변의 손길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도움 주실 분 계좌= 경남은행 207-0099-5182-02(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남지회)

    △4월 11일 16면 (87)원가정 회복에 나선 엄마와 삼남매 경남은행 후원액 300만원 일반 모금액 5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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