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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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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계묘년에 읽는 을묘사직소- 이우완(창원시의원)

  • 기사입력 : 2023-04-27 19: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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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조선을 움직인 한 편의 상소, 을묘사직소’라는 책이다. 백 쪽 남짓 되는 얇은 두께의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는 한문 문장을 번역하며 독자들이 원문의 맥락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곳곳에 주해를 달아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번역문을 읽어내려가다가 곳곳에서 주해를 찾아 읽느라 흐름이 다소 끊기는 점도 있었다. 그럴 때는 주해를 찾아 읽고 나서 그 단락을 통째로 다시 읽었다.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더뎠지만, 원문에 담긴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글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 많이 올라왔다. 1555년 을묘년 토끼의 해에 나온 ‘을묘사직소’가 서른아홉 번의 토끼의 해가 더 흐른 2023년 계묘년에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

    ‘을묘사직소’는 남명 조식 선생이 명종으로부터 단성현감을 제수받고 이를 사양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그러나 남명은 상소문에서 벼슬을 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조선 조정과 명종임금까지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명성은 헛이름일 뿐이며, 헛이름을 바치고 벼슬을 받는 것은 매관(買官)보다 못한 것이기에 벼슬에 나아갈 수 없다며 자신을 한껏 낮춘다. 그러나 임금을 두고는 임금의 책무를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며, 나라는 이미 고기 뱃속처럼 썩어버려서 자신이 관직을 맡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벼슬에 나아갈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더 나아가 임금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다며, 학문을 좋아하는지 음주가무와 여색을 좋아하는지를 따져 묻기까지 한다. ‘죽을죄를 범하며 아룁니다’로 끝나는 상소문의 마지막 문구처럼, 남명은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해야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강직한 선비요, 지행합일을 실천한 학자였다.

    2023년의 대한민국 독자들이 1555년의 을묘사직소에 열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후활동으로 남명 선생이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계묘사직소’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우완(창원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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