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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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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 정태영·조민경 창원시청 체육인 부부

휠체어컬링도 사랑도 운명… 10년째 빛나는 찰떡 호흡
태영씨 2007년 경남 첫 컬링팀 창단멤버
민경씨는 2011년 부산서 휠체어컬링 입문

  • 기사입력 : 2023-04-19 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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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계 올림픽 인기 종목인 ‘컬링’은 ‘얼음 위의 체스’라 불릴 정도로 전략이 중요하다. 패럴림픽 종목으로 가면 ‘휠체어 컬링’이 있는데, 컬링스톤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브룸(빗자루)을 사용하지 않기에 기존 컬링보다 전략적인 측면이 더 집중된다.

    경남에는 휠체어 컬링 혼성 2인조(믹스더블) 국가대표가 있다. 창원시청 휠체어컬링팀 소속 정태영(52)·조민경(47)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올해로 10년 차 부부이기도 하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경남과 한국을 대표하는 장애인 체육인 부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창원시청 휠체어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청 휠체어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태영씨 2007년 경남 첫 컬링팀 창단멤버

    민경씨는 2011년 부산서 휠체어컬링 입문

    10여년 전 경남 대표-부산 대표로 첫 만남

    송호근 선수 오작교 역할로 연인으로 발전

    ◇산청 남자 부산 여자, 컬링에 닿기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던 태영·민경 부부의 삶의 궤적은 휠체어컬링에서 처음 맞닿았다. 10여 년 전 각각 경남 대표와 부산 대표로서 연습장과 경기장에서 인사 정도만 하던 게 시작이었다.

    태영 선수는 2007년 컬링에 입문했다. 2000년 3월 부산에서 일을 하던 중 낙상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쳤던 그다. 산청에서 나고 자랐지만, 치료·재활을 위해 입원했던 창원병원이 그에겐 두 번째 고향이 됐다. 평생 앉게 된 휠체어 위에서 좌절감도 느꼈다. 운동은 좌절감은 잊고 사회성을 유지하는 창구가 됐다.

    그는 동료 장애인들의 권유로 재활 운동 겸 시작한 탁구에 흠뻑 빠졌다. 처음에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점차 운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 남들보다 소질도 있어 휠체어 탁구 경남 대표로도 활동했다.

    이어 2007년 탁구 선생님이었던 김우진 감독(현 창원시 곰두리국민체육센터 관장)의 눈에 띄어 경남 최초의 휠체어컬링팀에 창단 멤버로 들어가게 됐다. 김 감독은 처음부터 태영 선수에게 스킵(팀을 이끌고 전략을 결정하는 선수) 역할을 맡겼는데, 그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며 컬링에서도 우수한 실력을 뽐내게 됐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민경 선수는 2003년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쳤다. 3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재활 목적으로 처음 시작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2010년 수영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는 등 재능도 보였다.

    이후 부산에서 장애인 수영 선수와 요트 선수로 활약하던 그녀는 2011년 부산장애인체육회로부터 컬링 선수를 제안받으며 빙판 위에서 컬링스톤을 만지게 됐다.

    태극마크를 달고 휠체어 컬링 혼성 2인조 경기를 펼치고 있는 정태영·조민경 부부./조민경씨/
    태극마크를 달고 휠체어 컬링 혼성 2인조 경기를 펼치고 있는 정태영·조민경 부부./조민경씨/

    ◇“그댄 나의 기적, 나의 기쁨”= 컬링장에서 얼굴만 알고 지내던 태영·민경 선수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현재 창원시청 휠체어컬링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송호근 선수의 역할이 컸다.

    송 선수는 2012년 당시 민경과 요트 국가대표로 같이 활동했고, 태영과도 과거 탁구를 같이한 절친한 관계였다. 송 선수가 오작교를 자처하면서 시작된 밥 한 끼와 커피 한잔으로 둘 사이의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태영·민경 부부는 사랑을 확인하게 된 날을 잊지 못한다. 한날은 송호근 선수가 셋이 모임에 가자고 말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겼던 태영이 민경에게 “호근이 어때?”라고 물었다. “그냥 친구지”라 말하는 민경에게 태영은 재차 “나는 어때?”라고 물었고 이에 민경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태영은 민경을 자신의 삶에 찾아온 ‘기적’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처음 민경의 번호를 받아 휴대폰에 ‘나의 기적’이라고 저장했다고 한다.

    그는 “다리를 다치고 나서 결혼이라는 걸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웬 여자가 나타나 행복을 줬잖아요.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저장했었죠. 결혼하고 나서는 항상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 생각해 ‘나의 기쁨’으로 바꿨습니다”고 말했다.

    반대로 민경은 태영을 ‘오빠’로 저장했다가 지금은 태영의 요청에 ‘신랑탱’으로 바꿨다. 민경은 “‘나의 기적’이라고 저장된 걸 봤을 때 감동했었어요. 부모님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반대했었는데 점차 이해해 주셨어요”라고 했다.

    창원시청 휠체어 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 트랙을 돌며 손을 들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청 휠체어 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 트랙을 돌며 손을 들고 있다./김승권 기자/

    둘은 사귄 지 1년 만에 결혼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니 반대하는 가족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적극 지지해 주고 있다. 결혼 직후 민경은 태영이 있는 창원휠체어컬링팀으로 옮겨 지금까지 한 팀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랑에 관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영·민경 또한 사랑에 장애가 없다고 단언했다. “장애는 사랑이란 감정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에요. 몸이 아프다고 해서 행복할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창원시청 휠체어 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내 사무실에서 손을 잡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청 휠체어 컬링팀 정태영·조민경 부부가 창원종합운동장내 사무실에서 손을 잡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장애인 동계체전 등 각종 대회서 금메달

    지난해 국대 선발전 우승하며 태극마크

    부부 시너지 효과로 경남 휠체어컬링 빛내

    올해도 소속팀 선수들과 리그전 준비 몰두

    ◇부부여서 가능했던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컬링은 국내외 가리지 않고 다른 스포츠보다 부부나 자매 등 가족 관계로 얽힌 팀이 많다.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특성상 무너지지 않는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태영·민경 팀도 경기장 내에서 부부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내며 경남 휠체어컬링팀을 빛내고 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2014년 함께 출전한 ‘제11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열린 휠체어컬링 믹스 더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기도 했다.

    부부는 경남에 대한 애착도 깊다. 한때 국가대표 상비군을 하면서 전남으로 팀을 옮겼지만 타지 생활을 한다는 불편함에 1년 만에 경남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같은 팀 선수들과 함께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리그전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민경은 “오랜 시간 서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호흡을 맞춰왔기에 믹스 더블 종목에 강점을 보이는 것 같아요. 경기를 하다 보면 의견 차이도 발생하지만, 서로가 더 잘하길 바라는 관심과 애정으로 느끼기에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장애인들에게 운동 등 사회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독려했다. “아직도 집에서 나오지 않는 장애인들이 많아요. 가만히 있으면 몸에도 안 좋고 사회성도 떨어지게 되죠. 인프라가 많이 갖춰졌기에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고 취미를 가졌으면 합니다. 단순히 생활체육도 계속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여러 갈래의 길이 보이게 될 거니까요.”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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