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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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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내가 만약-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3-04-19 19: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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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집에서 거베라 10송이를 득템했다. 색색의 꽃송이가 눈부시게 화사하다. 가로수길 파스타 맛집에 갔다. 맛있는 음식냄새에 이끌려 계단을 단숨에 오른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엔 음악을 듣는다. 좋은 음악은 약보다 낫다. 마음 내키는 날엔 혼자 산책을 한다. 누구의 도움도 간섭도 필요없다. 나의 몸과 오감은 오롯이 나의 것. 한 번도 이 ‘당연한 세상’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의 저자 이규식에겐 이 ‘당연한 세상’이 단 한 번도 당연하지 않았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뒤틀린 몸 때문에 걸을 수 없었다. 학교가 아닌 방구석에서 유년기가 흘렀다. 청년기엔 10년 넘게 시설에 갇혀 지냈다. 1999년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를 겪으며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투쟁의 산물 중 하나인 저상버스를 볼 때마다 그를 생각한다. 하지만 저상버스에서 장애인을 본 적은 없다.

    ▼대한민국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1월 기준 265만4000여명. 20명 중 1명꼴로 적지 않다. 그런데 평소에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이들은 주로 집이나 시설에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집밖에 나와도 못 가는 곳이 더 많고 시설에서 나와도 자립하기가 쉽지 않다. 동정과 시혜에 머무는 시선과 사회적 편견은 또 다른 장벽.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에 불친절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주저앉아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타인의 도움 없인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면.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쓴 코다(CODA·농인 부모의 자녀) 이길보라는 말한다. “당신과 나의 고유함이 ‘틀리다’ ‘비정상적이다’라는 말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의 다름과 고유함을 존중하며 ‘나’가 ‘너’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생의 여정이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기를 꿈꾼다.” 장애인의 날인 오늘이 ‘이해의 여정’ 첫날이길 바란다. 변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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