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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24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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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7주년 기획] 77세 라상호 사진가 꿈의 여정 ⑦·끝 꿈의 모아이를 만나다

내 꿈의 시작과 끝, 세상의 끝에서 완성하다

  • 기사입력 : 2023-04-11 13: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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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일출지의 모아이 석상들.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일출지의 모아이 석상들.

    3월28일

    칠레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도 만만찮다. LATAM 항공 국제선에서 또 카메라 백 규격과 무게를 가지고 따진다. 30여년 내 두 어깨 위에서 고락을 같이 했지만 이번 여정에서만 두어번째이다. 이륙 5분전까지 실랑이를 하다 꼭 가야하는 길이기에 82불을 지불하고 말았다. 옆의 자국민들은 더 큰짐을 싣는 것에 대해 관대하더니 외국인에게만 유독 냉철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이중적 행정에 화가 났지만 어쩌랴, 가야하는 길이라면 웃으며 가자. 모든 걸 다 잊고. 화창한 날씨가 나를 반기지 않는가! '모아이 석상'이 웃으면서 나를 반길 것이다. 다섯번째 꿈이 너무 쉽게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우스운 일이 아닌가.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귀한 글귀를 떠올리며 비행기에서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여정을 무사히 지나온 일에 감사했다.

    칠레 산티아고 국립 미술관.
    칠레 산티아고 국립 미술관.

    3월29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남미에서는 각 나라 수도 중심에 있는 큰 광장을 아르마스 광장이라 부른다) 근처에 있는 칠레 산티아고 국립 미술관에 갔다. 많은 학생들과 관람객들이 가득한 미술관에서 오전 내내 여러 조각품과 회화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관람을 마친 뒤 1세대 이민자의 애환이 서린 한인촌에서 교민이 운영하는 중국집 짜장면을 먹었는데 한국에서의 맛 그대로 느껴졌다. 외곽에 위치한 한인촌을 둘러보며 우리 교민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뿐이었지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오후에는 숙소 근처 아라우까노 공원을 산책하며 바트리찌오(50)와 쎄산(40) 두 친구의 듀엣의 버스킹에서 위로를 받았다. 헤어진 여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의 곡이란다.

    1856년부터 7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칠레 산티아고 쿠지노 마쿨 와이너리.
    1856년부터 7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칠레 산티아고 쿠지노 마쿨 와이너리.

    3월30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칠레 쿠지노 마쿨(Cousino Macul) 와이너리를 찾았다. 1856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7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곳이라니 이들의 역사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칠레 산티아고 외곽에 자리한 이곳에 오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며 2시간 넘게 걸려 찾아왔는데 꼭 오고 싶었던 곳에 당도하니 너무 마음이 평안했다.

    평소 지인들과 함께 좋은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 모임을 열어온 지 꽤 오래되어 와이너리에 온 것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고 남다른 감흥 속에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와인 생산지에서 향과 와인의 맛을 느꼈던 것 보다 한 가문의 인문학적 사고를 배웠다는 점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의 향기처럼 살고 싶다. 이 가문이 영원하길 소원하며 나는 내 꿈의 나라 이스터섬으로 간다.

    3월31일

    아침이 상쾌하다. 창문 너머엔 높은 설산이 자리하고 산등성이에 어린 새벽빛이 아름답다. LATAM 항공 비행기에 나의 분신을 싣고 떠난다. 지금부터 태평양을 5시간여 비행한다. 푸른 바다 위를 날아 오후 3시경 꿈에 그리던 이스터섬의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활주로가 짧아 약간 언덕을 오르는듯하며 기착하는 모습이 네팔 루크르와 유사했다. 공항은 인산인해인데 서두르는 이 하나 없는 것이 신기하다 택시의 호객행위도 없다. 다만 5분 거리의 호텔까지 3만원을 내라고 한다. 비싼 택시비에 놀라며 머무르는 동안 고물가에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모든 걸 잊고 오늘은 푹 쉬었다 나의 길을 가야겠다. 나는 언제나 '내일이 더 좋은 날이다'고 믿는다.

    4월1일

    태평양 바람은 따뜻하고 정겨웁지만 바람은 꽤 세차다. 구름이 많은 날 작은 동네를 둘러보고 일정을 위한 탐사에 나섰다. 우선 국립공원 입장료를 80불에 끊고 420불에 6일간 차량을 렌트했다. 이제 찾아나설 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올 미지의 신세계다.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만 자란 고목, 원시림이 남아있고 야트막한 산등성이엔 신비의 세계가 가득하다. 드디어 만난 모아이다. 내 꿈의 모아이 석상. 젊은 시절 처음으로 내가 사진을 찍고 싶게끔 만들었던 해외판 관광 핸드북 속 모아이 석상을 두 눈에 담게 된 것이다. 모아이의 전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해 있음이 내겐 아름답다. 앞으로의 탐사에 바다는 푸르고 하늘을 더 높이 푸르르길 소원한다.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일출지의 모아이 석상들.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일출지의 모아이 석상들.

    4월2일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에 왔다. 천지를 창조한 신은 이런 날 세상을 만들었나 싶다. 전율이 흐른다. 숱한 구름이 쏟아져내린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하늘의 변화다. 황홀한 해트임보다 나는 이 하늘을 사랑한다. 이 색감을 좋아한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의 열림에 때때로는 숨이 멎는 것만 같기도 했다. 벅차오르는 감동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 돌아오는 새벽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오후에는 개일 것이고 나는 또다른 모아이를 만나러 아후 타하이에 갈 것이다. 이제 파아란 하늘을 따라 길을 나서야겠다.

    4월3일

    아주 오래된 옛날 화산 폭발로 태평양 한가운데 생긴 작은 섬이 이스터섬이다. 새벽마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풍경에 놀라왔다. 오늘 하늘은 청담색. 너무나 맑고 깊은 색이다. 오늘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유적지를 찾아가는 날이다. 이제 이곳 모든 유적지는 현지인과 함께하지 않으면 출입이 통제된다. 유적지 접근도 어렵고 난 길로만 따라 가야한단다. 개인적으로는 유적은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은데 통제를 하니 무덤 속의 유적이 된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갇혀 있는 것만 같은 유적에 가슴이 아프다. 사진가에게는 공간 선택이 사진가 고유의 시선이 드러나고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못해서 아쉽다.

    채석장의 유적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두려웠다. 맑은 하늘도, 모아이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이것을 절망이라고 하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이스터섬에 왔다면 더 자유롭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또 앞으로 나가야 하질 않겠나! 더욱 진실되게, 열심히 순리를 따라야겠다. 나는 여행의 신이 지켜주고 있으니. 오전 6시 아후 통가키리 일출을 보고, 오전 9시 30분에 오롱고 분화구, 오전 11시 유일하게 바다를 향하고 있는 모아이가 있는 아후 아키비, 오후 1시 아후 나우나우, 오후 2시 30분 아후 통가키리, 오후 4시 라노 라라쿠, 오후 7시 아후 비나푸까지 정말 고된 하루였다. 두 어깨와 두 다리가 고마웠다. 난 이걸 해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내 사진작업도 사랑한다.

    4월4일

    새벽부터 또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힘들었던 어제를 위로하는 듯 잠깐 쉬라고 한다. 비가 멈추면 몇날째 벼렸던 샌드위치 집에 가야겠다. 매일 아침을 토스트에 딸기잼, 오렌지주스, 사과하나가 전부였다. 푸른 남태평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카페, 향기 짙은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보고 있자니 페루와 칠레유적군에서 공동점을 하나 발견한다. 유적군의 기초석 건축양식이다. 짜맞춘듯한 정교함, 바늘이 들어갈 틈조차 주지 않는 장인정신이 새삼 또 신비롭다.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의 하늘을 보고 웃고 있는 모아이. 이번 꿈의 여정 기록을 함께 한 경남신문 깃발을 꽂고 영원을 기원하고 왔다.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의 하늘을 보고 웃고 있는 모아이. 이번 꿈의 여정 기록을 함께 한 경남신문 깃발을 꽂고 영원을 기원하고 왔다.

    4월5일

    만나는 사람마다 '올라'하며 인사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가 너무 좋다. 오늘과 내일은 비움과 여유로움의 시간을 갖는다. 다시 찾아가야할 곳을 촘촘히 챙길 것이다.

    하늘 향해 당당히 누워있는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 모아이는 푸른 남태평양을 머리에 이고 돌베게를 베고 누워있다. 그러곤 내게 말을 건넨다 세상 부러울 게 없고 편안하며 평화롭다고. 그의 곁에 앉아 이제 나의 꿈 여행도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의 일출 모습.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의 일출 모습.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의 일출 모습.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의 일출 모습.
    모아이 채석장인 라노라라쿠(Rano Raraku)의 모아이.
    모아이 채석장인 라노라라쿠(Rano Raraku)의 모아이.
    빨간 모자를 쓴 모아이가 있는 아후 나우나우(Ahu Naunau).
    빨간 모자를 쓴 모아이가 있는 아후 나우나우(Ahu Naunau).

    4월6일

    새벽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보름달이 떠 있어 훤한 새벽이다. 모아이들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길을 나서야겠다. 일출지인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모아이 채석장인 라노 라라쿠(Rano Raraku), 빨간 모자를 쓴 모아이가 있는 아후 나우나우(Ahu Naunau), 유일하게 바다를 향해 보고 있는 모아이가 있는 아후 아키비(Ahu Akivi), 일몰지 아후 타하이(Ahu Tahai)까지 돌면서 행복하라며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 뜻깊은 여정을 함께 한 경남신문 깃발을 모아이 곁에 꽂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경남신문의 영원을 바라고 왔다. 이 기고가 아니었다면 꿈을 이룬 기록을 세세히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경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고로 꿈을 온전하게 이뤘고, 물리적인 지면에 남긴 셈이다. 누군가가 이 여정의 기록을 보고 또 다른 여정을 결심한다면 기쁠 것이다.

    이제 이곳에 또 오기는 어렵다 본다. 이제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가슴 한 곳이 텅 빈 듯 아려온다. 부족함도 새삼 느낀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배워 더욱 마음에 걸린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애 첫 타투. 내 꿈이었던 모아이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 모아이석상을 팔에 남겼다.
    생애 첫 타투. 내 꿈이었던 모아이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 모아이석상을 팔에 남겼다.
    생애 첫 타투. 내 꿈이었던 모아이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 모아이석상을 팔에 남겼다.
    생애 첫 타투. 내 꿈이었던 모아이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 모아이석상을 팔에 남겼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큰 결심을 했다. 꿈을 만들어줬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준 이 모아이를 내 몸 한 곳에 남겨두는 것이다. 더 오래 생각않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타투이스트를 찾아가 내 팔 가운데 모아이를 새겼다. 타투 아티스트인 그는 20년 이상 이 작업을 했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 했다. 이제 모아이는 나와 항상 함께 있다.

    내 생애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길, 돌아가서 이 기록을 '영혼이 쉬어가는 히말라야'보다 먼저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다섯번째 나의 꿈을 이룬 것을 보다 생생하게 먼저 전달하고 싶다.

    이번 '꿈의 여정'을 마무리 하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끝없이 관대한 나의 가족, 나의 형제자매에게도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창동갤러리 관장

    정리=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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