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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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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배한봉(시인)

  • 기사입력 : 2023-03-29 19: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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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대화 없이 헤어졌다. 늘 비슷한 일상이다. 문득 자취하던 중학생 때 일이 생각난다.

    새벽 서너 시쯤, 극심한 귓속 통증에 잠을 깨고는 다급하게 옆방 문을 두드렸다. 옆방 아저씨는 비명 지르는 나를 업고 의원을 찾아 내달렸다. 몇 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2층 불이 켜진 의원을 발견했다. 귓속에서 제법 큰 벌레를 꺼낸 원장은, 2층은 가정집이고, 1층은 의원인데, 거실 전등을 깜박 끄지 않고 잠든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는 농담을 했다. 벌써 5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다.

    지금이면 119에 전화해 빠르게 해결했을 일이다. 그런데 누구나 어떤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이웃집 문을 두드리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시사회는 개인주의 성향과 익명성이 다분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이웃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관심을 사생활 침해로 여기는 세태도 한몫하고 있다.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많이 바뀌면서 층간 소음 분쟁으로 얼굴 붉히는 일도 다반사다. 혼밥, 1인 세대 같은 용어는 일상화됐다. 복지사각지대니 고독사니 하는 보도가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것도 개인화된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옛일을 돌이켜 보니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이웃’은 ‘사촌’이라 불릴 만큼 가깝고 소중한 관계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멀어진’ 이웃사촌, ‘낯선’ 우리 동네라 일컬을 만큼 교류가 거의 없다. 빨리빨리 사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상대를 마음의 눈으로 보려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노력을 그다지 하지 않는 것 같다. 장미의 ‘가시만 보고 향기를 맡지 못했다’는 근시안적 태도를 깨닫고서야 자신의 별에 돌아갈 수 있게 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이야기는, 좋은 관계는 상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이해가 필요함을 각성시킨다.

    나를 업고 달리던 아저씨를 떠올리며 나부터 먼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이웃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자 마음속 꽃봉오리가 살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배한봉(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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