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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발언대] 가해자가 살아남는 법- 도영진(사회부)

  • 기사입력 : 2023-03-20 19: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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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피해자가 신고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 탓에 시행 전부터 우려가 컸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4년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4분기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280명)를 대상으로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법을 조사한 결과 ‘참거나 모른척했다’가 10명 중 7명 이상(73.2%)으로 나타났다.

    법이 실효성 없다는 지적처럼 이 설문조사가 시작된 해인 2019년 9월(59.7%)보다 되레 증가했다. 참거나 모른척한 이유를 보면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8.4%,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21.2%다. 역시나 법 취지가 무색하게 ‘회사 또는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자는 5.4%에 그쳤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회사에 신고한 뒤 벌어진 한 상황을 보노라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한 직장인은 최소 1년 이상 상사로부터 당한 직장 내 괴롭힘과 성적 발언(성희롱)을 참고 또 참다 회사에 신고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뭉개지 않았고, 최소한의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와 함께 가해자 징계 처분도 이뤄진 것이다.

    불행한 일은 쉽게 멈추는 법이 없다. 피해자가 일터를 옮긴 뒤, 가해자는 징계를 뒤집어보려 하는 건 물론 자신의 ‘우군들’에게 자신의 가해를 포장하며 가해 사실을 부인한다. 반성은커녕 피해자에게 한 번 더 가해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가해자로 낙인찍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말이다.

    더 불행한 일은 이다음부터다. 가해자의 기대대로 ‘네가 운이 없었네’와 같은 가해자 옹호는 물론 글로 옮겨 적기 힘든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펼쳐진다. 가해를 합리화하고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고 비난하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가 선택한 방법,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 채 가해자를 감싸는 우군들 탓에 피해자는 ‘2차 가해’에 시달리기에 이른다.

    피해자가 더 이상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슬픔과 분노를 꾹 누르며 참았던 사람들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고 한다. 가해자의 연대보다 피해자의 연대가 더 견고할 것이리라.

    도영진(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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