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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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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69) 짐본포의(朕本布衣)

- 황제인 나도 본래 베옷 입은 평민이었다

  • 기사입력 : 2023-02-28 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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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명(明)나라 시조 주원장(朱元璋)은 어릴 때 가난하여 먹고살 길이 없어 남의 머슴 노릇도 하고, 승려생활도 하다가 당시 농민 봉기 대열에 참여하여 승리를 거두어 마침내 황제가 되었다. 그에 대한 선입견은 무식한 사람일 거라는 것이다. 운수가 좋아서 황제까지 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문으로 된 문집이 있었다. 어릴 때 그가 절간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충분히 글을 지을 수 있었다.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아주 출중한 업적을 남긴 황제였다. 청(淸)나라 강희(康熙) 황제가 두 번이나 그 황릉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치적이 당나라나 송나라보다 낫다(治隆唐宋:치융당송)”고 칭송했다. 강희황제가 그에게 아첨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는 중앙집권제를 완성하고, 교육을 중시하고, 토지를 정비하고, 세금을 낮추는 등등 업적이 많았다. 몸소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발상에 독창적인 것이 많았다.

    그의 문집에 ‘황릉비(皇陵碑)’라는 글이 있는데 자기 부모들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주원장은 만약 문신들에게 지으라고 시키면 지나치게 꾸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짓는다고 했다. 어려서 고생고생하면서 살아가다가 수많은 전투를 거쳐 황제가 되는 여러 가지 일을 적어 놓았고 정작 부모에 관한 일은 별로 많이 적지 않았다. 조상의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는 고조부 이상은 전혀 모른다.

    주원장이 처음에 주씨(朱氏) 중에 제일 유명한 주자(朱子)의 후손으로 할까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다 같은 안휘성(安徽省) 사람이니까 그러면 학문이 있는 집안의 후손이 되어 신하들이 자신을 더 존경할 것 같았다. 그때 안휘성에서 어떤 관원이 서울로 왔는데, 성이 주씨였다. 주원장이 “주자의 후손이냐?”고 물었더니, 그 관원은 당당하게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주원장이 깨달았다. 조상에 기대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면 안 되고 자신이 바르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저 말단 관원도 당당하게 ‘주자 후손 아닙니다’고 말하는데, 내가 황제가 되어 가지고 조상을 위조해서 되겠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에는 어디서나 서슴없이 “나는 본래 베옷 입은 백성이다[朕本布衣]”고 이야기했다.

    훌륭한 조상에 훌륭한 자손이면 좋겠지만 그것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누구의 자손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에는 “내가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그것은 뜻대로 될 수도 있다. 아무도 안 말린다. 무슨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현인(賢人)이나 성인(聖人)도 될 수 있다. 다만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안 될 따름이다. 좋은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별 이름 없는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가치가 있다.

    *朕 : 짐 짐(황제의 자칭). 조짐 짐.

    *本 : 근본 본. *布 : 베 포. 펼칠 포.

    *衣 : 옷 의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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