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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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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오일파스텔 만드는 한국화가 박에스더

꽃 그리던 한국화가, 오일파스텔로 꿈 그리다
한국화 전공 후 부산서 학예연구원 생활

  • 기사입력 : 2023-02-22 20: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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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돼지, 메밀, 벚꽃놀이, 조선백자, 된장, 빙판, 안개자국, 여름잔디의 공통점은? 모두 한 오일파스텔의 색상 이름이다. 한글로 쓰였으며 누구나 쉽게 색깔을 유추할 수 있는 이 오일파스텔을 대형 문구기업이 아닌, 한 개인이 시작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창원에서 오일파스텔을 만들어내고 있는 ‘화원(Hwawon)’의 박에스더(34) 대표를 만났다. 한국화가인 그는 어떻게 서양화가들이 쓰는 오일파스텔(크레파스) 제작에 뛰어들고, 10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을까.

    한국화가 박에스더씨가 오일파스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한국화가 박에스더씨가 오일파스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뜻대로 안돼도 오히려 좋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전공하다, 고3 때 갑자기 미술로 방향을 전환한 박 대표는 부산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전공으로 입학했다. 입학하고도 진로를 두고 방황하다 대학원에 진학, 부산대 아트센터 학예연구원으로 2년간 일하다가 2017년 결혼해 창원에 있던 남편을 따라 연고 없는 창원으로 이사왔다. 꽃이 도형의 집합처럼 느껴져 ‘꽃으로 쓰는 훈민정음’을 특허출원하고, 논문으로 써서 예술대 학생 처음으로 부산대 전체 최우수논문상(석사)을 받은 그였는데 저도 모르게 풀이 죽었다.

    “개인전도 8번 가지며 정말 열심히 달려온 터라 회의감이 느껴졌달까요. 그래서 당분간 조용히 혼자서 작업을 해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창원 성산구 가음정동 반지하에 첫 작업실을 열고, 스스로 월세를 내기 위한 수업을 열기로 했다. 꽃(花:화)그림(畵:화)을 좋아해 ‘화원(Hwawon)’이라 지었다.

    “저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누가 불러줘야만 강의할 수 있다면, 그냥 제 수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공한 한국화, 혹은 취미 미술로 많이 접하는 수채화 혹은 유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그것보다 좀 더 쉽고 간단한 재료가 없을까 생각했죠.”

    그때 찾은 것이 오일파스텔이었다. 어릴 적 크레파스의 추억을 갖고 있고, 미끄러지듯 그려지는 질감까지 재료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는 수강생들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그림 영상을 올리자 팔로워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오일파스텔 작가들이 많지만, 2019년만 해도 2~3명의 작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일파스텔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라이브 방송에는 사람들이 몇천 명씩 몰려들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오일파스텔 제작

    “작가지만 제가 수다를 떨면서 모자란 모습까지 보여드리니 친근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게 요청사항도 많으신데요, 평소 라이브 방송 때 제가 오일파스텔은 다 좋은데 색끼리 잘 섞이지도 않으면서 중간색이 없어서 아쉽다는 소리를 많이 했거든요. 그러면 직접 만들어 달라는 요구들이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만들지 못한다고 손사래 치다가 팔로워 수가 늘어나고, 대구는 물론 제주와 서울에서까지 하루짜리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영향력을 실감했다. 그림친구들에게 오일파스텔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크레파스와 오일파스텔을 구매해 제조지, 제조사를 비교하고 제작가능한 곳을 수소문했다. 가능성을 내비친 공장이 다행히 김해에 있었다.

    “2019년 제작을 선언하고 1년여를 개발에 매달렸어요. 일주일에 공장을 세 번씩 찾아가서 논의를 하고, 96색을 맞춰내느라 정말 힘들었죠. 어디에나 잘 묻어나는 성질에다 색조합도 힘들고, 잘 부서지기까지 하니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색상만 정해서 공장에 제조 일체를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획부터 제조 관리, 포장까지 저희가 다 맡았죠.”

    자른 크레파스 형태로 나온 오일파스텔이 김해에서 창원 공장으로 도착하면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나씩 종이 포장하고, 함에 넣어 제품을 완성시킨다. 출시 즈음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손쉽게 하는 취미생활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파스텔 판매가 잘 됐다. 유료 온라인 클래스 강좌를 개설하고, 책 ‘플라워 오일 파스텔 원데이 클래스’를 펴냈으며 오일파스텔 거치 도구를 디자인해 특허를 냈다.

    “진로를 진중하게 고민하면서 미술사와 영어를 공부해둔 것이 지금에야 수업과 영어 페이지 작성 등에 잘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전시기획과 손님 초청, 보도자료 작성, 예산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행정업무 처리까지 모든 일을 경험한 것도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힘이 되고요. 뭔가 그간 어쩌면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들이 한번에 꿰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일을 벌이길 좋아하고, 재밌게 느끼는 것도 알게 됐죠.”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서 오일파스텔을 만드는 한국화가인 박에스더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서 오일파스텔을 만드는 한국화가인 박에스더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매일 그리는 힘, 함께 그리는 힘

    오일파스텔 수업이 거의 없던 때, 그는 매주 화요일 오후 9시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으로 오일파스텔 그림 그리는 법을 강의했다. 지금도 종종 라이브로 그림친구가 된 이들과 소통한다. 그림일기를 함께 채우거나 내준 그림 숙제를 검사하고, 전시를 열면서 그림을 지속하게 하는 서로의 원동력이 돼 준다. 그는 갈수록 이 힘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 했다.

    “감사하게도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일로 위안을 받는다는 연락을 많이 받는데요,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간질을 앓는데 제 라이브 방송을 보고 그리는 1시간 동안은 편안하게 집중하고, 그린 걸 몇 번이고 다시 그려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며 감사하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그런 걸 보면 정말 그림이 좋다는 걸 느껴요.”

    그는 잘 그리는 것보다 꾸준히 그리는 걸 강조한다. 편하게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하고 개발해낸 이유다.

    “산책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배우고 잘해서 산책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일상 중의 좋은 코스가 되듯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생각하면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은데, 그냥 계속 그리는 것이 의미있는 것 같아요.”

    그는 그림과 같이, 사업에서도 꾸준함을 이으려 한다. 어린이 후원도 이어나가고 싶다.

    “사업을 시작한 게 제 능력보다는 축복같은 느낌이 들어요, 마침 김해에 공장이 있었던 것, 취미 미술 시장을 일찍 시작한 것, 팔로워가 늘어난 것까지 모두요. 저도 이 감사함을 나누려고 컴패션(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을 통해 최고 빈민국가로 꼽히는 아이티 어린이들을 돕고 있어요. 오일파스텔은 어린이들이 많이 쓰는 재료이니까요. 꾸준히 사업을 잘 꾸려서 좀 더 많은 아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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