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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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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경남을 보다] 2. 결혼 후 출산 주저하는 30대 여성들

‘내 삶’ 포기할 수 없어 ‘엄마가 되는 삶’ 포기했어요

  • 기사입력 : 2023-01-09 2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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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2년 9월 인구동향을 보면 지난해 3분기(7~9월) 경남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0.86명(전국 0.7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07명 줄었다. 경남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2020년 0.95명을 기록하면서 2008년 합계출산율 조사 이후 처음으로 0명대로 진입한 데 이어 지난 2021년엔 0.9명으로 1년 새 0.05명이 더 줄었다. 출생아 수도 지난 2013년 3만명 붕괴 이후 2019년에 1만명대에 진입했으며, 지난 2020년 1만6823명(전국 27만2337명), 2021년 1만5562명(전국 26만562명), 지난해 9월까지 1만813명(전국 19만2223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도 지속되고 있다.

    경남은 지난 2018년부터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밑돌았다. 지난해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 전문지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성 역할 가치관과 결혼 및 자녀에 대한 태도’ 연구보고서를 보면 본인 자녀의 필요성에 대한 태도에서 여성 응답자 7032명 가운데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28.1%,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는 답은 36.2%로 나타나 전체의 64.3%가 자녀가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없어도 무관하다’는 답변은 31.6%로, 여성 10명 중 3명 이상은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통계가 말해주는 경남의 저출산 실태. 통계 결과를 매번 접하면서도 통계 속 당사자인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간 깊이 들어볼 기회는 적었다. 경남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2명을 한 자리에서 만나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지만 출산을 주저하는 이들은 “여성이 내 삶을 포기해야 엄마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출산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시댁에서 알면 곤란할 것 같다”는 두 여성의 우려를 존중해 이들의 이름은 익명으로 기사에 담는다.

    ◇“결혼했으면 애를 낳아야지”=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도내 한 시 지역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지난 2014년 결혼한 1985년생 김지혜(38·가명)씨. 오전 7시 30분에 정례 회의를 시작하고 은행 셔터문이 내려간 이후 자정 무렵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격무에 몸과 마음은 나날이 지쳐갔다. 일의 만족감 대신 스트레스를 얻는 나날이 쌓일수록 마음속엔 ‘결핍’으로 설명되는 감정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양가를 비롯해 주위에선 자녀 계획을 세우지 못한 부부에게 ‘결혼했으면 애를 낳아야지’, ‘애를 낳아서 애국해야지’ 같은 말을 심심찮게 했다고 한다. 일이 너무 힘든 탓에 ‘정말 애를 가지고 낳은 뒤 육아휴직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까지도 해봤지만, 동료를 돌아보니 ‘아이를 출산하는 게 끝이 아니구나’ 싶어 충격받기도 했단다.

    “워킹맘 동료 한 명이 아침에 은행 셔터 올리기 전에 아이랑 같이 출근해서 자리에 앉혀 놓고 일하다가 유치원 차가 은행 앞으로 오면 맡기더라고요. 그때 은행 셔터문이 올라가요. 친정 부모님이 아이 하원을 맡아주지 못하는 날에는 은행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밤까지 일하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하고 어떤 날에는 코피도 흘리고 간혹 밤에 응급실 가서 주사 맞아가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모습을 보니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내가 있어야 애도 있는 건데 삶에서 ‘나’는 없어질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김씨의 어머니 건강이 악화됐고, 그가 2년여의 긴 간병을 도맡아야 하는 사정에 직장을 그만뒀다. 하루 24시간을 간병에 매달린 그의 헌신으로 어머니는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이때부터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도 있었고, 아로마 테라피스트로서 새출발하며 삶의 만족도 느끼는 중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갖추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이후 육아로 사실상 잃을 수밖에 없는 제 일과 삶이 솔직히 두려워서 여전히 자녀 계획은 없습니다. 낳는 게 끝이 아닌데도 정부는 아이를 낳기만 하라는 식의 지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주변 모든 아이가 건강해야 내 아이도 건강할 수 있듯이, 정부와 우리 사회가 출산해도 여성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책 방향을 짜고, 어느 지역에서든 차별 없이 전인적으로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촘촘하게 갖추면 좋겠습니다.”


    ◇“‘정규직 직장인’이 아니어서 출산·육아는 유예해야 할 일”= 도내 한 군지역에서 작은 규모의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1984년생 윤정희(39·가명)씨. 결혼 3년차인데다 내년이면 마흔이라 이제는 아이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되지만 출산 계획을 유예하고 있다. 윤씨에게는 다행히도 양가의 ‘출산 압박’은 없지만, 출산을 먼저 경험한 주위 사람들은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지’와 같은 독려(?)가 많다고. 출산을 계속 미루다가는 임신 확률이 점점 더 희박해질 것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지만, 맞벌이인 윤씨 부부 상황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윤씨의 연 소득은 4000만원 선, 도내 한 군지역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10년 차 직장인인 남편 김진수(39·가명)씨의 연 소득은 약 3500만원으로 임신을 준비하고 출산과 산후조리를 하는 약 1년 시간 동안 김씨의 소득으로만 가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30년 만기 3억원의 아파트 대출 원리금이 매달 나가고 있고 둘의 각종 보험과 생활비, 차량유지비, 양가 부모님 용돈으로 지금도 빠듯한 살림살이인데 윤씨는 자기가 벌지 못할 경우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공백은 1년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는 더욱 겁이 난다.

    윤씨는 “직장인이 아닌 사실상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인 제 경우에는 1년의 공백이 1년으로만 끝나지 않고 회복하기 힘든 경제적 손해로 연결된다”며 “임신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운동을 내려놓아야 하고, 임신 기간은 물론 출산 후 수개월의 산후조리까지 운동을 중단하고 레슨을 하지 못한다. 사실상 학원 운영을 전면 중단해야 하는 셈이고, 산후조리 이후 지금처럼 다시 학원을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동안 윤씨와 같은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 고용보험 미가입 국민은 아이를 낳으면 생계가 완전히 끊기는 탓에 임신과 출산을 꺼려온 게 사실이다. 임금근로자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들이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에게까지 두텁게 혜택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자영업자라고 하면 ‘평소에 많이 벌잖아’라고 주위에서 말하죠. 그런데 그만큼 나가는 돈은 생각 못 해요.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직장인들도 물론 불만이 많겠지만 제 입장에선 육아휴직이란 제도를 사용할 수 있고, 휴직급여가 있어 적어도 저처럼 출산을 유예하지 않아도 되니 정규직 직장인이 너무 부럽기만 해요. 우리 다음 세대에선 자영업자도 주저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까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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