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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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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경남을 보다] 1. 함양 휴천면 금반마을

다 함께 아이 키우는 마을… 27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 들렸다
2021년 대전서 귀촌한 김진희씨
시골서 뛰어노는 아이들 너무 예뻐

  • 기사입력 : 2023-01-02 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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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의 합계출산율(2021년 기준)은 0.9명으로 첫 1명대가 무너진 직전 해보다도 0.05명 더 줄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로 지난 2021년 경남의 인구소멸위험지수는 주의 단계에 해당하는 0.56으로 광역지자체 중 6번째로 소멸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1.09와 비교해 소멸 속도가 뚜렷해진 것이다.

    출산·육아 휴가를 늘리는 것은 물론 출산 장려금과 부모급여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장려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소멸 위기 극복의 핵심인 출산율 높이기는 한계에 다다랐다.

    본지는 경남을 떠나지 않고 사는 기혼 청년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경남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아들만 둘이라 ‘딸이 태어나면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던 찰나 임신하게 돼 딸을 출산했습니다. (살아보니) 차만 있으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에는 함양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에 귀촌해 살고 있는 김진희(40)씨는 지난 2021년 대전에서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지난해 8월 셋째 예솜이를 출산했다.

    김씨는 “시골에서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데 즐겁게 뛰어노는 걸 보면 너무 예뻤다”며 “도시보다 교통이나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곳에서도 셋째 출산을 마음먹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 큰 검진은 타 도시로 가서 진료를 받지만, 간단한 진료는 보건소나 소아과가 있어서 많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예솜이의 독감·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전화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지난해 11월 진행했다.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금바실학당에서 조은화씨 모자가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금바실학당에서 조은화씨 모자가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씨 가족에게 귀한 늦둥이 딸 예솜이는 금반마을에서도 소중한 아이다. 이 마을 토박이인 김성웅(50) 이장의 막내아들 출산 이후 무려 27년 만에 볼 수 있었던 아이였던 것.

    지난해 9월 말에는 김성웅 이장 주도로 27년 만에 태어난 아기 ‘금반둥이’ 탄생을 축하하는 마을잔치까지 열렸다. 마을잔치에는 마을주민과 군청·면사무소 관계자, 군의회 의장까지 수십명이 참석한 것은 물론 함양군은 이 소식을 보도자료로 내 전국으로 알리기까지 했다. 주민들은 오랜만에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니 마을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1월 16일 찾은 금반마을회관 2층 금바실 학당 벽 한쪽에는 예솜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네 아이들의 편지도 볼 수 있었다. 김진희씨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셔서 놀라고 감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금반둥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건 김씨 가족의 결심뿐만 아니라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마을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기에 가능했다. 금반마을은 도시에 비해 교육·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가운데서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갖추기 위해 민관이 협력해 출산·양육에 대한 부모의 부담을 줄이려 노력한 대표적인 곳이다.

    아이를 키울 만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교육 여건 조성. 마을주민들은 학원 한 곳 없는 시골 마을에 배움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김성웅 이장을 비롯한 마을주민, 금반초등학교, 휴천면사무소, 금반초교 학부모들은 2021년 10월 금반마을회관 2층 유휴 공간에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 ‘금바실 학당’을 개관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주민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바꿔보고 싶은 김 이장의 열정이 민관 협력을 이끌어낸 것이다. 김 이장은 “수십년 동안 방치된 공간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마을주민들과 함께 리모델링하고 행정에도 도움을 요청했다”며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꿈과 배움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되면 마을도 살리고, 학교도 살리고, 더 크게는 지역도 살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금바실학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김성웅 이장/
    금바실학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김성웅 이장/

    금바실 학당은 김 이장의 바람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재 금바실 학당에 등록한 아이는 7명. 대부분 금반초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방과 후 학생·학부모가 원하는 국어, 수학, 영어, 한자, 일본어 등을 가르치는 학원이자 아이들 스스로 학습하는 공부방은 물론이고 돌봄 공백을 메우는 돌봄교실 공간으로도 자리 잡은 것이다.

    금바실 학당은 지난 2021년 10월 개원 당시에는 거제에서 20여년간 사설교육기관에서 운영하다 퇴직한 후 귀촌한 김일웅씨가 재능기부를 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금반초교와 병설유치원에 자녀 3명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이자 귀촌해 마을에 정착한 조은화씨가 아이들 교육을 맡고 있다. 또, 학부모, 마을주민과 출향민은 책과 운영 물품을 기부하거나 정기적으로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학원 한 곳 없어 아이들 공부가 걱정되지만 일터로 나가야 해 봐줄 사람도 없는 시골마을 실정에 딱 맞는 맞춤 공간이 된 셈이다. 주말부부인 김진희 씨가 금반둥이 예솜이를 임신했을 땐 첫째, 둘째가 금바실 학당에서 또래와 시간을 보내면서 돌봄 부담을 덜 수도 있었다.

    금바실 학당은 지난해 ‘경상남도 공동체 활동 지원 주민 공모사업’에도 선정돼 책 놀이터, 점자 벽보 만들기, 미술관, 영화관 등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금반마을의 사례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복지 정책 방향이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기보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갖춰 출산 및 양육에 대한 부모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혼했지만 출산을 꺼리는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같은 맥락일 터.

    조은화씨는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곳으로 귀촌했지만, 아이들이 마을에서 친구들과 놀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금바실 학당이 생겼다”며 “다 같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마을주민과 학부모가 합심하다 보니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조씨는 또 “20대 중반에 결혼한 뒤 현실적인 이유로 아이가 낳기 싫어 5년이 지나 첫 아이를 출산했는데, 이후 세 명을 차례로 낳고 보니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 커 지금은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뛰어놀면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금바실학당에서 27년 만에 아기가 탄생한 것을 축하하는 마을 행사 당시 함양군 관계자가 김진희씨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경남신문DB/
    지난해 9월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금바실학당에서 27년 만에 아기가 탄생한 것을 축하하는 마을 행사 당시 함양군 관계자가 김진희씨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경남신문DB/

    금반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금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마을 교육공동체 조직에 나선 것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지역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금반초등학교는 15년 전인 지난 2008년부터 ‘아토피 보건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전국에서 귀농·귀촌 가정이 학교를 찾았는데, 학생 수가 점차 줄어 지난해 말 기준 전교생이 19명일 정도로 위기에 놓여 있다. 학부모들은 마을교육공동체인 ‘휴천 꿈마실’을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스스로 재능기부를 하는 한편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마을주민들과 소통의 목적으로 마을회관 청소하기, 어르신 반찬 해드리기 등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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