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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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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9) 마산수협 남성공판장 중매인 가게

켜켜이 쌓인 어상자엔 중매인의 치열한 삶이 차곡차곡

  • 기사입력 : 2022-12-07 20: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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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 트기 전, 경매로 한창 바쁜 마산수협 남성공판장을 돌아나오면 길가에 줄줄이 이어진 점포들이 보입니다. 여기선 노란 불빛 아래 나무 어상자채로 고기를 늘어놓고 어상자·바구니 단위로 수산물을 팝니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어시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요. 생선 비린내가 더 짙게만 느껴지는 이곳에서 수산업에 36년간 몸담으며, 22년째 중매인을 하고 계신 마산수협남성공판장 ‘35번’ 중매인 배종은(62·마산수협 남성공판장 중매인협회장), 임노미(61)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그날 그날 나오는 생선이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일손을 거들어 보려고요.

    이아름 PD가 마산 어시장에서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이아름 PD가 마산 어시장에서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오늘의 할 일

    -참조기, 갈치, 굴, 활게 판매하기

    -전라도 새우 점포로 운반하기

    -팔리는 대로 어상자 정리하기

    -배종은 임노미 대표님 인생이야기 듣기


    ◇치열한 ‘손’싸움, 경매

    05:30 지난 알바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경남항운노조 김동서 반장님이 품목을 읊으면 중매인들 가슴에 얹힌 손들이 바빠집니다. 경매사에게만 보이게끔 입찰가를 손으로 제시하는 ‘수지법’으로 물건을 사고 있기 때문이죠. 멸치와 달리 여기서는 거래되는 수산물 종류가 너무 많고, 날마다 수량이 다른 데다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아직 전자경매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성공판장에서는 1~40번까지, 32명의 중매인들이 있는데요, ‘물건이 많이 나면 뒤에 사는 것이 싸고, 물건이 적으면 일찌감치 사는 게 싸다’는 기본 원칙 아래 중매인들의 눈치 작전이 시작됩니다.

    마산어시장 새벽 경매에서 35번 배종은(뒷줄 오른쪽 두 번째) 중매인이 경매에 나온 수산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마산어시장 새벽 경매에서 35번 배종은(뒷줄 오른쪽 두 번째) 중매인이 경매에 나온 수산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좋은 물건 잡고, 싸게 살라꼬(사려고) 경쟁이 말도 몬하지(못해). 어느 중매인이 다른 사람보다 20~30% 이상 비싸게 사는 일이 생기면 그땐 난리가 나거든. 수협, 어민하고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겨 서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그래사도(그렇게 해도) 또 웃고 지내는 거지, 뭐.”

    숫자 ‘35’가 적힌 모자를 쓰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는 배 대표님의 목표물은 갈치와 참조기, 새우 등입니다. 중매인마다 특징이 있는데 배 대표님네는 주로 갈치를 많이 판매하신다고 해요.

    “올해 갈치가 많이 들었지(잡혔지). 물 흐름 때문인지 아구(아귀)는 없고 말이야, 이맘때면 여기 다 아구가 쫙 깔리는데…. 요 며칠은 조기가 귀해. 바다에 바람이 불었다 하더라고, 그러면 고기가 없거든.”

    경매가 진행될 동안 알바들은 낙찰받은 전라도 새우를 리어카에 싣고 가게 쪽으로 밀어봅니다. 그때그때 경매를 마친 수산물들이 이렇게 리어카를 타고 35번 중매인 가게에 도달하는 것이지요.

    이슬기 기자가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에 번호표를 붙이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에 번호표를 붙이고 있다.

    ◇아침을 여는 만원의 행복

    06:09 상자를 내리고 이제는 가게에서 임노미 대표님과 함께 판매를 할 차례. 어둠을 뚫고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경매 직후에 나오는 가장 싱싱하고 저렴한 수산물을 사러 온 분들이지요. 좁은 길가에 취재진 넷이 서 있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혼이 났습니다.

    “아이가, 이리(이렇게) 다 가리가꼬(가려져서) 오늘 물건 팔겠나.”

    갓잡은 신물(선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가치가 떨어지다보니, 빠르게 전투적으로 팔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선들 앞에서 얼쩡거리면 안되는 것이죠. 알아서 몸을 웅크리며 몸피를 줄입니다. 제가 판매할 것들은 씨알 작은 참조기, 대구리 갈치, 통영 깐굴로 모두 만원이고 활게만 한 상자 4만원이네요. 이 시장에서는 만 원어치가 많습니다. 건너편 쪽에선 아름PD가 새로 들어온 어상자를 나르고, 손님들이 주문한 수산물을 비닐에 담느라 분주하네요. 대구나 물메기 등 큰 생선은 대표님이 직접 손질을 해주시는데요, 얼굴에 튄 생선 핏자국을 닦을 새도 없이 일을 이어갑니다.

    06:47“참조기 만 원~, 대구리 갈치 만 원~. 어머이, 이거 참조기인데 좋지요? 한 짝 이게 다 만원이에요. 대구리 갈치도 마릿수가 많아요. 오늘 경매받아 온 거거든요. 조리가꼬(졸여 가지고) 드시면 맛있겠다.” “그러네, 헐타(싸다). 좀 애비긴(야위었긴) 한데 이거 주보소(줘 보세요).”

    열심히 설명한 만큼 잘 팔려서 뿌듯하지만 금세 지치고, 허리와 손목이 시큰거립니다. 간혹 가다 날 서있는 시장 분들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리어카가 지나갈 때 비켜달라는 큰 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낯설었는데 지금에야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생물이 곧 생계와 직결된 데서 오는 바쁜 마음, 그 마음을 서로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이 기자와 이 PD가 새우를 실은 수레를 밀고 있다.
    이 기자와 이 PD가 새우를 실은 수레를 밀고 있다.
    이 기자가 중매인에게 새우를 배달하고 있다.
    이 기자가 중매인에게 새우를 배달하고 있다.

    ◇더위, 추위와 싸우며

    07:23 마산가고파수산시장에 속하는 이곳의 수산물이 저렴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손님들이 많이 북적입니다. 특히 토요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네요.

    “2004년에 이리로 왔을 땐 처음에 사람이 하나도 사람이 없어 고생했는데 7~8년 전쯤부터 꽤 들기 시작했지. 그러다보니 예전엔 도매가 많았다면 요새는 소매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나.”

    수산 경력이 4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중매인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손님이 많은 오전 11시까지는 앉을 새 없이 일해야 합니다. 남는 고기가 없으면 오후 1시반께부터 정리하며 늦은 점심을 한 숟갈 떠 보지만 고기가 남으면 오후까지도 계속 떨이를 팝니다.

    “신물(선어)이 어렵거든. 안 팔리면 재고로 갖고 있기가 어려우니까. 냉동고에 들어가면 잘 못 팔어. 집에서도 나중에 물라꼬(먹으려고) 넣어놓으면 묵나(먹어?), 안 묵지(안 먹지). 3일 연속으로 같은 종이 들면 무조건 싸지는데 매일 어찌 들어올지 모르니까 예측하기도 어려븐 기라(어려운 거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10~16㎏되는 어상자들을 옮기고, 춥고 더운 날씨도 이겨내야 합니다. 여름은 덥고, 생선도 잘 상해서 얼음을 많이 써야 해 힘들고, 겨울에는 너무 추우면 생선이 얼어 다루기 까다롭고, 손님들도 시장에 나오지 않아 장사가 고달픈 거지요.

    “그런 날은 ‘오늘 손 안 드는 날’인갑다(인가보다) 해야지,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 몬해(못 해). 오후 시간이 좀 자유로운 게 좋고, 주로 현금거래라 이 일이 좋다 생각해야지.”

    이 기자가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이 기자가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또다른 변화를 앞두고

    08:22 내년 상반기에는 남성공판장이 지금 짓고 있는 새로운 공판장으로 옮겨갑니다. 현재 공판장이 마산구항 방재언덕 조성에 따라 어선 접안이 어려워 어업인들이 어획물을 위판하는 데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공판장이 옮겨감에 따라 현재 중매인 가게들이 옮겨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판장이 바다 앞쪽으로 나오는데 중매인 점포들이 그대로 있으면 수산물들을 옮기는 데 어려움이 따르니까요. 이전하게 된다면 오래된 모습을 잃지만 현대적 시설과 고객들을 위한 주차장을 갖추고 수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답니다.

    “여기는 어떻게 될지 결정은 안됐어. 지금 점포는 노후화됐고 열악하니 현대적 시설에서 중매인들이 판매를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라지.”


    ▶지역자산기록 보고

    옛 대동상회 객주 건물

    마산어시장 대동상회 객주창고
    마산어시장 대동상회 객주창고

    창원상공회의소가 1900년, 마산어시장 객주들의 모임인 ‘마산상호회’에서 시작했다는 걸 아시나요? ‘객주’는 개항기 때 숙박시설과 창고 등을 갖고 장사배가 채집한 어류를 모아 위탁판매를 해주는 이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수협·중매인·호텔을 합친 형태였죠. 이들은 단순히 일반적 상인들의 친목과 상권옹호를 넘어 모금을 통해 개항 후 일본 등 외국 자본 침투를 방어해 생존권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역사로 사라진 마산포 객주는 마산어시장 내 남아있는 ‘대동상회 객주창고’에서 당시의 흔적을 엿볼 뿐입니다. 1895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벽돌의 이 건물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 전국 유일의 객주 건물로 보존 가치가 높습니다.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면 몇십년 전 과거로 돌아가 있는 듯한 이곳, 마산창원 경제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잘 정돈해 역사문화공간으로 쓸 순 없을까요.

    글= 이슬기 기자·사진=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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