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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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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범사(凡事)-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 기사입력 : 2022-12-07 19: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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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력이 한 장 남았다. 한우데이가 지나고, 단감데이가 지나고, 입동이 지나고, 가래떡 데이가 지났다, 소설(小雪)인 김치의 날이 지나고, 종합소득세 중간예납 기한이 지나자 달력이 달랑 12월만 남았다. 함께 하는 100년 농협! 달력의 표기가 신선하고 재미있다. 한우데이는 고기의 맛이 최고라는 의미에서 1(일)이 세 번 겹치는 11월 1일이다. 가래떡데이는 11월 11일의 모양이 가래떡과 비슷함에서 착안되었고, 김치의 날인 11월 22일은 김치의 재료 하나하나가 모여 22가지 이상의 효능을 지닌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그 상상력이 재치가 넘치고 기발하다. 오랜 세월 농사를 기반으로 살아온 농민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산물이다. 12월의 첫째 날은 새콤달콤한 감귤 데이로 시작한다.

    텅 빈 황량한 북면 들판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다. 짧은 가을이 가고 다가 올 겨울을 예고한다. 치우지 않은 가지 밭에는 농심 인양 주름 패인 가지가 몇 개 남았고, 고춧대를 치우지 못한 고추 밭에는 쪼그라든 빠알간 고추가 덤성덤성 매달려 있다. 늦게 수확하는 대봉감은 꽃보다 붉고, 서서히 대지는 봄을 위한 휴식에 들어간다. 사람도 쉬고 땅도 쉬어야 한다.

    병원 앞 텃밭이 풍성하다. 고목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2개 매달려 있고, 토실하게 살이 오른 무밭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김장용 배추는 새끼 대신 노끈으로 동여매었고, 앙증맞게 만든 미니 비닐하우스에는 철 잊은 상추가 파릇하게 자란다. 늦가을의 결실이 멀리 있지 않다. 모두가 한때 영농후계자로 촉망받은 진주 대곡면이 고향이신 부지런한 강반장님 솜씨다. 땅과 함께 살아오신 이분은 배울 점이 많다.

    ‘100년 병원으로 가자’는 우리 병원의 목표다. 2008년 북면 인구 1만명인 시절에 개원해 현재 인구수 4만3000명을 넘어선 지금까지 지역민과 소통하고, 그들과 더불어 정체성을 확인해가며, 조직은 이미 유아기를 넘어 성장기를 지나고 있다. ‘행복한 요양병원의 경영 목적은 전 직원의 행복을 실현하는 데 있다. 행복한 요양병원의 경영 목적은 전 환자의 행복을 구현하는 데 있다.’ 병원의 경영 목적이다. 병원의 1차 고객인 우리 임직원들의 인화와 2차 고객인 환자분들의 건강을 지키자는 의미다. 궁벽한 시골 병원에도 수도권 대형 병원처럼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

    가끔은 야근을 한다. 일과를 마치고 병원을 방문하는 지인을 안내하는 일도 있고, 병원 목표를 향한 방안 모색을 위해 자료 수집도 하고, 책을 뒤적이기도 한다. 한국경제신문사가 펴낸 요시모리마사루가 지은 ‘독일 100년 기업이야기’를 본다. 소규모 가족기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담긴 재미난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BMW사의 ‘크반트 가문’ 이야기가 흥미롭다.

    병원은 밤에도 살아있다. 훤히 불 밝힌 건물은 자체로 랜드마크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원무부서 직원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심사팀은 월말이 아닌데도 늦도록 진료기록과 서류 정리로 간호부와 협의하며 바쁘다. 소회의실은 치료의 이론에 관심이 많은 젊은 치료사들이 운동과학연구소 최 소장의 명 강의에 열공 중이다. 이 모두 오래 전 조직에 부여된 자율성의 발현이다.

    삶의 여정은 그리그리 이어진다. 생로병사와 함께. 걸어도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지만 늘 그렇듯 뚜벅뚜벅 걸어간다. 목표를 향해서. 이제는 세대 교체도 염두에 둔다. 100년을 향하는 길목에서.

    치과대학에 다니는 진료부원장 따님이 치과 진료를 하고, 재활치료실 센터장 아드님이 재활의학 과장으로 취임하고, 김 약사 따님은 대를 이어 약국을 지킬 것이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자연스레 사람도 바뀌어 가는 것이다. 매사가 고맙고 범사가 다 감사한 일들이다.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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