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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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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오래된 미래, 모두를 위한 미술관 -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기사입력 : 2022-11-23 2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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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전으로 기억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인 개가 주요 관람객이 되는 전시였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나로서는 고양이를 위한 미술관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실제 고양이는 집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개를 관람객으로 맞이하는 게 합리적이긴 하다. 개를 위한 전시이니 개의 시선을 생각해 전시 작품은 한참 아래에 설치되었고, 노란색과 파란색으로만 사물을 분간하는 개의 특성을 배려해 디자인도 그에 맞추어졌다. 관람객이 사람에서 동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개들은 이 공간을 정말 오고 싶어 했을까.

    얼마 전 ‘도큐멘타 경남 II - 형평의 저울’에 참여한 서평주 작가가 경남도립미술관에 장애인이 방문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실증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제작해 전시한 적이 있다.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점자안내판의 위치나 전시작품의 높이가 너무 높다는 지적은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였는데, 경사로 끝의 유격에 의해 발생한 1㎠의 턱이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요소라는 것, 2층과 3층 장애인 화장실은 공간이 좁아 실질적으로 사용이 어렵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 시설을 설치한 오류가 드러난 것이다.

    두 가지 사례를 보면, 미술관의 공공성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공립미술관은 미술이나 행정 모두 일정 정도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운영되는 일종의 전문가 집단이다. 그러다 보니 ‘모두를 위한 미술관’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외치는 허울 좋은 구호가 되기 십상이다. 모두를 위하려면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고 모두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사실상 지금 현실에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다.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인 목소리가 반영돼야 하고, 어린이를 위한다면 어린이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발화되고 실현될 수 있는 장치가 미술관에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오랫동안 미래에만 머물고 있는 이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현실에 발현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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